'이게 다 노무현 덕분이다'라고 말하는 언론인들...

고재열
2009-05-28
조회수 316

지난 토요일(5월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듣고 곧바로 봉하마을로 내려갔다. 멍했다. 그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마음을 추스를 수가 없었다. 길게 늘어진 추모행렬을 따라 걸어 들어가며 많은 생각을 했다. ‘그의 죽음이 나에게 의미하는 것이 무엇일까?’

봉하마을에 도착하니 모든 게 어수선했다. 그리고 모든 게 부족했다. 조문 온 국민들을 대접할 것이라곤 생수밖에 없었다. 다음날도 상황이 그리 호전되지 않았다. 흔히 상가에서 문상객을 대신하는 육개장도 없었다. 대신 ‘육개장 라면’이 있었다. 그것이라도 먹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굶는 수밖에 없었다. 아니면 십리길을 걸어 나가거나.

그 육개장 라면을 받기 위해 후배 기자와 줄을 서있는데 반갑게 손짓하는 사람이 있었다. MBC 박성제 전 노조위원장이었다. 노조 민실위 간사였던 김재용 기자는 열심히 기사를 송고하고 있었다. 박 전 위원장은 도시락을 권했다. 그러나 받아들 수는 없었다. 행여 나 때문에 MBC 제작진 중에 끼니를 거르게 될 사람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대신 김밥 두 줄을 받아들었다.

현장은 열악했다. 먹을 것도 없었고 노트북 컴퓨터에 연결할 전원도 없었다. 화장실에서 전원을 끌어와 기사를 송고하는 기자들도 있었다. 그러다 비가 와서 다들 처마 밑으로 파고 들었다. 그 열악한 현장에서 KBS <시사360>의 강윤기PD와 MBC <PD수첩>의 프리랜서PD, 그리고 ‘낙하산 사장 퇴진 운동’을 힘겹게 진행했던 YTN 기자들을 보았다. 집회 현장이 아닌 취재현장에서 그들을 보니 반가웠다.

서거 이튿날 밤 기획회의를 위해 서울로 올라왔다. 오는 길에 덕수궁 대한문 앞 시민분향소를 찾았다. 그 초라함에 눈물이 났다. 분향소까지 가는 길은 중무장한 전경들이 막아서고 있었다. 역적이 죽은 것도 아닌데. ‘전직 대통령에 걸맞은 예우가 이것이란 말인가’ 깊은 한숨이 나왔다.

그곳에서 최상재 언론노조 위원장 민주당 최문순 의원 기독미디어연대 임순혜 대표 등을 만났다. 최 의원은 상주격으로 빈소를 지키고 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애도하며 그들은 다가올 6월 입법전쟁을 걱정하고 있었다. 이전과 변한 게 있었다. 다들 막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된 것 같았다. ‘이게 다 노무현 덕분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언론인들은 미안함을 가지고 있었다. 유독 그에 대한 비판에 언론은 가혹했다. 조중동 등 보수언론뿐만 아니라 진보언론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언론은 비도덕적인 정치인에게는 도덕성을 그리 문제 삼지 않으면서 도덕적인 정치인에게는 가혹한 도덕성의 잣대를 들이댔다. 노무현 비판이 버릇이 되어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며 일명 ‘노탓놀이’까지 생겨나기도 했다.

그런 전력 탓인지 빈소에서 많은 언론사들이 문전박대를 받았다. 조중동은 물론이고 KBS와 연합뉴스에까지 화가 미쳤다. 특히 KBS 취재진이 큰 수모를 당했다. 편파 방송을 이유로 노사모 회원들이 빈소 옆에 있는 KBS 중계차를 내쫓았다. KBS 중계차는 ‘빈소’ 옆이 아닌 ‘황소’ 옆에서 뉴스를 전해야 했다.

이제 언론인들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미안함과 함께 고마움을 품게 될 것 같다. 언론장악 저지 100일 대장정의 막바지에 큰 동력을 얻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언론노조 미디어행동 등 언론관련 단체들이 여의도 벚꽃놀이나 각종 마라톤대회 현장에서 대국민 선전전을 펼쳤지만 역부족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슈에서 멀어졌고 다들 ‘어떻게 싸우나’하는 걱정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상황이 급반전 되었다. 여당 실세의원이 “이제 6월 입법은 물건너 갔다”라고 말할 정도로 민심이 흉흉해졌다. 한나라당에 불리한 쪽으로. 상중이라 여야 모두 법안 이야기를 하지 않고 있지만 이제 야당 쪽이 미디어관련법안 처리와 관련해 헤게모니를 잡게 되었다.

야당을 뒤에서 받쳐주는 것은 바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죽음으로서 지키려고 했던 ‘상식의 프레임’이다. ‘상식이 무너지고 있다. 그래서 상식을 바로 세워야 한다’는 의식이 국민들에게 퍼져 나가고 있다. 조문마저 막는 경찰을 보면서 시민들은 말한다. ‘이게 대한민국이냐?’ ‘이게 민주주의냐?’

이제 언론인이 상식을 지킬 차례다. ‘방송은 정권의 것이 아니라 국민의 것이다’ ‘조중동이 혹은 재벌이 국민의 방송인 공영방송을 날로 먹을 수 없다’ ‘국민들이 인터넷을 통해서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상식을 지켜야 한다. 노무현의 죽음이 우리에게 말하는 바다.

상식은 힘이 세다. 과거의 총체며 현재의 약속이며 미래의 전제조건이기 때문이다. 그 상식이 살아있다는 것을 언론인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추도 물결에서 읽고 힘을 낼 수 있었다. 지난해 촛불이 그랬듯이. 노무현의 죽음은 끝이 아니고 시작이다. ‘이게 다 노무현 탓이다’라고 놀렸던 언론이 미디어악법을 막아내고 ‘이게 다 노무현 덕분이다’라고 말할 날이 오기를 고대해본다.

<* 편집자주 - 고재열 기자가 <독설닷컴>에 게재한 글입니다. 언론학교 강연에서 한 이야기들을 정리하고 있어 함께 올려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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