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언론의 새로운 판을 짜는 사람들
충북민주언론시민연합이 창립 20주년을 맞아 지역언론의 새로운 판을 짜는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지난 9월 26일 충북시청자미디어센터에서 진행된 좋은 콘텐츠 포럼 <지역언론의 새 판을 만들다>에서는 척박한 환경에서도 좋은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지역의 언론인들이 직접 연사로 나섰다. 포럼은 △콘텐츠 △보도 △운영 세 부문으로 나눠 지역민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 혁신 사례들을 공유했다.
○ 콘텐츠 : 시사·다큐, 지역방송의 가치를 보여주다
지역 공영방송과 PD 저널리즘의 가치
KBS청주 김효진 PD가 포럼의 포문을 열었다. 김효진 PD는 녹록지 않은 지역 시사 다큐 제작 여건에도 <다큐공작소>, <한끼시사> 등의 프로그램을 꾸준히 만들며 PD 저널리즘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김효진 PD는 “페미니즘 이슈는 꾸준히 화제가 되고 있음에도 방송에서 우회적으로만 다룰뿐 당사자의 목소리를 들려준 적은 거의 없다”며 암암리에 금기시 된 방송사의 페미니즘 회피를 비판했다. 이런 문제의식을 정면 돌파하고자 김효진 PD는 페미니스트들을 불러 모아 토크 형식으로 <한끼시사>를 만들기도 했다. 해당 편에서는 청주 중학생 성폭력·아동학대 사건 같은 성폭력 이슈나 충북의 성평등 지표를 함께 보며 깊이 있게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KBS청주는 네 명의 PD가 시사 프로그램을 꾸려가고 있다. 김효진 PD는 시사 프로그램의 포맷을 따로 두지 않고 현장과 당사자를 만나고 있다고 말했다. ‘수어’를 다뤘던 <다큐공작소>의 ‘소리 없는 세계’는 세상에 나오기까지 4개월이 걸렸다고 한다. 수어를 다루기 위해서는 PD부터 수어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하기에 직접 배우는데 시간을 들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편집 또한 수어 통역사와 함께 했다고 한다. 최근 화제가 되었던 청주동물원의 갈비뼈 사자 구출기 ‘안녕 바람!’도 두 달 정도가 걸렸다. 김효진 PD는 장기간에 걸쳐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었던 이유는 제작 기간에 정해진 선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를 통해 긴 호흡으로 지역 이야기를 담아도 적극적인 관심이 있고, 지역민들도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KBS청주총국은 올해에 ‘좋은 프로그램 상’, ‘좋은 보도 상’ 등 많은 상을 받았다. 김효진 PD는 이런 저력이 30분짜리 다큐를 매주 만드는 것에서 나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7월 15일, 폭우가 내리던 날에도 네 명의 피디는 각자의 아이템 준비를 잠시 뒤로 하고 참사 현장으로 향했다. 밤새 장례식장과 오송 참사 현장을 촬영했다. 이를 중심으로 여러 피해에 대해 시간대 별로 정리하고 취재했다. 많은 방송 팀이 있었지만 이들은 청주에 사는 사람들이기에 제일 일찍 가고, 제일 늦게까지 자리를 지키며 보다 깊이 있는 취재를 할 수 있었다. <다큐공작소>에서는 같은 날 산사태로 숨진 청년의 죽음을 최초 보도하기도 했다. 관련 기관에서는 파악조차 되지 않은 사건이었지만, 취재가 시작되니 담당자들도 부랴부랴 유가족에게 연락했다. 안타까운 일이 많았지만, 누구보다 자세한 보도를 하며 김효진 PD는 지역에서 일한다는 것에 대한 효능감과 쓸모를 느꼈다고 말했다. KBS 본부의 시사 프로그램인 <시사직격>에서도 수해 피해를 다뤘지만, 오송 참사는 하나의 사례로만 등장했다. 결국은 전국적인 이슈, 기후 문제라고만 다뤄진 것이다. 하지만 지역에 사는 우리는 오송 참사가 재난 시스템 컨트롤타워의 부재임을 안다. 국토관리청과 충청북도, 청주시가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것도 지역에 사는 사람이기에 취재로 밝힐 수 있었다.
김효진 PD는 함께 시사 프로그램을 만드는 네 명의 PD 모두가 충북 출신의 사람이 아니라고 말했다. 이들은 지역 색이 뚜렷하지 않은 충북을 보며 충북이 가진 매력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지만, 결국 현장에 답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더불어 지역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것의 힘을 느꼈다. 그는 지역의 언론인들이 지치지 않고 현장에서 기쁨을 얻었으면 좋겠다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가장 진보적인 콘텐츠, 지역에서 전국으로
MBC충북엔 정규직 여성 PD가 딱 한 명 있다. 바로 김우림 PD이다. 김우림 PD는 여성 출연자들이 나오는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PD가 본인 한 명 뿐이라며 다양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위해서는 여성 언론인의 존재와 역할이 중요함을 체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우림 PD의 첫 다큐멘터리는 <아이엠비너스>이다. 이 프로그램은 여성의 성에 대한 다큐멘터리로, 가부장제가 은폐한 여성의 몸을 상세히 다뤘다. 이를 바탕으로 2년 후 <성교육은 처음이라>를 만들었다. <아이엠비너스> 제작 이후 GV와 강연을 다니며 지역의 소도시로 갈 수록 성교육이 양극회됨을 느꼈다. 이에 대한 문제의식을 발전시켜 지역언론의 역할로 교육 격차를 줄이기 위해 포괄적 성교육 가이드라인에 따라 <성교육은 처음이라>를 제작했다. <어스온어스>는 호주와 제주를 여행하는 코로나 세대 청년들의 이야기인데, 모두에게 친절한 여행은 무엇인가를 고민하며 만들었다고 한다. 세 가지 프로그램 모두 방송통신위원회의 제작 지원을 받은 콘텐츠들이다. 김우림 PD는 재원도 사람도 부족한 제작 환경을 이야기하며 지원 사업에 응모해 콘텐츠를 만들 수밖에 없는 현실을 지적했다. 특히 아직까지도 터부시되는 ‘성’에 대한 프로그램을 만들며 방송사 내부에서 많은 우려의 소리를 들었고, <아이엠비너스>가 화제된 이후에도 그 우려는 크게 변하지 않았음을 토로했다. <성교육은 처음이라>에는 성적 정체성과 성적 지향에 대해 이야기했고, <어스온어스>에서는 성소수자로 커밍아웃을 한 사람이 주인공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우림 PD는 이런 과정이 제작진들에게도 문제의식을 심화하는 과정이었다고 전한다.
김우림 PD는 PD 최종 면접 기획안으로 자신이 주인공인 다큐멘터리 기획안을 제출했다. 아무런 연고가 없는 청주에 온 자신을 애니메이션 <마녀배달부 키키>에 빗댄 내용이었다. 이 애니메이션은 진짜 마녀가 되기 위해 연고 없는 곳에서 사람들에게 기쁨과 사랑을 전달하며 성장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담았다. 김우림 PD는 애니메이션의 OST를 틀며 MBC충북의 많은 제작진이 충북의 마녀배달부 키키가 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PD 겸 앵커로, 깊이 있는 라디오 시사 프로의 비결
CBS의 이수복 PD는 마이크를 잡자마자 올해 12월 31일 은퇴한다는 소식을 밝혔다. 그는 현재 CBS충북 <시사포워드>의 PD 겸 앵커로, 방송 생활은 30여 년, <시사포워드>는 15년 째인 배테랑이다.
이수복 PD는 “모든 것이 검열이고 모든 것이 투쟁이었”던 지역 여성 PD 1호이기도 하다. 방송 연결을 약속한 인터뷰도 생방송 당일 앵커가 여자라는 이유로 취소되는 등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가로막혔던 것을 시작으로 그는 지역의 여성운동과 합류하고 공부할 수 있었다고 한다. 청주를 떠나본 적 없는 자신을 지역의 ‘고인물’이라고 자칭한 이수복 PD는 일부러 이름 없이 여성 잡지를 만들기도 했다고 밝혔다. 앞선 두 PD와는 다르게 지역에 아는 사람이 너무나도 많은 이수복 PD는 자신의 흔적이 남는 것이 싫다며 포럼 참석 여부마저도 고민했다고 한다. 자신의 흔적과 연결된 이들이 해오는 비난과 선거철이면 더 심해지는 압박으로 지역의 유무형 관계들과 일부러 거리를 두었다.
그럼에도 그는 30년 동안 자신을 이끌어준 것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중앙언론에서 다루지 않고 살피지 않는 지역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자 했던 것이 30년을 버티게 했다. 실제로 이수복 PD는 1993년 발생한 ‘우암산 상가 붕괴 사건’ 때도, 2000년 ‘CBS 장기 파업’ 때도 현장을 지켰다. 현재는 구룡산 난개발을 막기 위한 투쟁에도 함께 하고 있다. 반면, 이런 문제를 <시사포워드>에서 크게 다루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남편이 구룡산살리기시민대책위원회 공동대표이기 때문에 이해충돌방지법에 저촉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이수복 PD는 앵커와 PD를 병행하게 되며 매일 라디오 앞을 지키는 자신을 대신해 어떤 방식으로든 로컬의 이야기를 담아달라고 언론인들에게 당부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위기를 맞은 언론에 대해 이야기했다. 열 달을 무노동 무임금으로 파업했던 이수복 PD는 당시 상황을 이야기하며 힘든 상황에서 오히려 제3자가 언론의 어려움을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고 말했다. 지금의 위기를 기회 삼아 더 나은 미래를 그려볼 수 있기를 바란다.
지역방송에 옴부즈맨 프로가 필요한 이유
CJB청주방송 방찬희 PD는 충북 지상파 3사 중 유일하게 시민 참여형 비평 프로를 만들고 있다. 10년 째 꿋꿋하게 옴부즈맨 프로를 제작하고 있는 방찬희 PD는 시청자 평가 프로그램을 만드는 이유로 ‘벌금’을 가장 먼저 떠올렸다고 한다. 방송법상 매주 60분 이상의 시청자 평가 프로그램을 방송하지 않으면 방송사는 큰 벌금을 내야 하기 때문이다. 방찬희 PD는 의무적으로라도 시청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장치를 마련하기 위한 것 같다며 강연을 시작했다.
CJB청주방송은 2011년 옴부즈맨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초창기에는 충북민언련의 이수희 대표도 평가원으로 함께 했다. 옴부즈맨 프로그램은 방송 송출만으로 일이 끝나지 않는데, 방 PD는 시청자 평가원이 방송 프로그램과 뉴스에 대한 공개 비평을 하면 방송 이후 해당 원고를 심의 부서로 전달한다고 밝혔다. 심의 부서에서는 해당 원고를 각 방송 부서로 전달해 피드백 자료로 활용하고, 방송통신위원회에 보고한다. 그는 이런 방식이 보도 데스킹과 다른 점은 ‘시청자의 입장에서 프로그램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전했다. 비슷한 업무를 수행하는 집단에서 하는 내부 시선은 한계가 있으므로 외부의 중립적인 시선에서 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이다.
방찬희 PD는 모든 방송국이 시청자 평가 프로그램을 방송하지 않으면 벌금을 낸다고 이야기했지만, 이것이 지역으로 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고 말했다. CJB청주방송에서 자체적으로 시청자 평가 프로그램을 만들기 전에는 SBS에서 제작한 프로그램을 송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법적 의무만 해결할 뿐, SBS 방송에 대한 비평만 이뤄지기 때문에 정작 지역 시청자들에게 더 밀접한 프로그램들은 비평 대상조차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방찬희 PD는 월 1회 방송이지만 지역 민영 방송사 중 제일 먼저 시청자 평가 프로그램을 정규 편성한 것에 대해 작은 자부심이 있다고 밝혔다. 특히 <TV를 말하다>에서는 시청자가 직접 출연한다. CJB청주방송은 충북시청자미디어센터와 협업해 직접 비평에 참여하는 시청자 비평단을 구성했다.
방찬희 PD는 해마다 모집하는 비평 단원에 많은 지역민이 참여하길 독려하면서도 모든 방송사가 시청자 미디어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고 밝혔다. 옴부즈맨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지만 이것이 얼마나 실효성이 있는가에 대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장 눈에 띄는 변화가 작을지라도 그는 지역 방송사와 지역민이 함께 코너를 꾸리는 것에 의의가 있으며, 이를 통해 서로가 조금이라도 가까워졌으면 한다고 마무리했다.
젊고 새로운 선거 콘텐츠
MBC충북의 이지현 기자는 지방선거 당시 청년면접단을 꾸려 후보자를 직접 검증하는 <청년면접> 프로그램을 기획·제작해 큰 호평을 받았다. 그는 ‘보통 청년들은 면접을 당하는 입장인데, 이를 뒤집어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에서 해당 프로그램이 비롯됐다며 프로그램 예고편과 함께 강연을 시작했다.
예고편의 마지막엔 ‘과연 청년들의 시장으로 합격할 수 있을까?’라는 멘트가 나온다. <청년면접>은 지난해 지방선거 이후에 방영된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이지현 기자는 이미 모든 시민의 단체장인 이 사람이 청년들의 단체장으로도 선출이 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고 한다. 특히 지난해에는 2030 청년들을 대변한답시고 나온 정치인들이 오히려 청년들이 원하는 담론과 의제를 더 묵살시키고 퇴보시켰다고 평가했다. 이런 상황에서 청년들이 진짜로 원하는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고, 이것이 지역 언론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지현 기자는 <청년면접> 이전에도 <청년, 정치를 묻다>라는 기획 보도를 했었다. 당시는 단체장을 선출하기 전이었고, 후보자였던 김영환·노영민 후보를 불러 압박 면접을 진행했다. 하지만 이들이 어떤 가치관을 갖고 있고, 이들의 정책이 청년들에게 실효성이 있는지를 묻는 과정에서 지원자들의 이야기가 많이 들어갔다고 평가했다. 면접관보다 지원자의 이야기가 더 많은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면접관으로 나선 청년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계기였다고 한다. 이후 <청년면접>에서는 예능적 요소를 감미하고, 단체장 섭외보다도 면접관 섭외에 공을 들였다. 본인의 색깔이 뚜렷하거나, 그동안 목소리를 듣지 못했던 이들을 찾으려 노력했고, 그 결과로 지방선거 출마 경험자, 중학교 학생회장, 장애인, 연극배우, 자영업자들을 섭외했다. 가장 공을 많이 들인 코너로 <소수의견>을 꼽기도 했는데, 아무리 면접관 섭외에 공을 들여도 다루지 못한 이야기들이 많기에 이런 대상들을 찾아 인터뷰 후 VCR로 만들었다. <소수의견>에는 농사를 짓느라 빚더미에 오른 청년 농부, 자립 준비 청년, 중도입국 청소년, 경계성 지능인의 엄마, 스쿨미투 활동가의 이야기가 담겼다.
이지현 기자는 <청년면접>이 호평을 받긴 했지만, 내부에서는 환영 받지만은 못했음을 밝히기도 했다. 이지현 기자와 함께 제작했던 김대웅 기자 모두 데일리 아이템을 제작해야 하는 취재 기자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지역에 사는 청년들의 이야기를 단체장이 듣고 마음을 움직였으면 좋겠다는 일념 하에 새벽까지 힘들게 제작한 프로그램에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청년면접>을 계기로 청년들이 정치적 효능감을 갖게 된다면 그것이 우리의 존재 이유라며 1부의 막을 내렸다.
○ 보도 : 지역사회를 밝히는 보도의 힘
지역민의 삶을 바꾸는 보도의 영향력
보도 부문은 CJB청주방송 안정은 기자의 <겹쌍둥이 부부의 눈물> 리포트 영상으로 시작했다. 안정은 기자는 쌍둥이를 두 차례 출산한 뒤 하반신 마비 증세로 어려움을 겪는 손누리 씨 부부의 사연을 보도해 지역사회에 큰 울림을 주었다. 이번 포럼에서 안 기자는 해당 기사를 취재하게 된 배경과 후일담에 대해 말했다.
올해 3월, 충청북도 인구정책 팀장으로부터 전화를 받은 안정은 기자는 김영환 도지사가 공약으로 걸었던 출산육아 수당을 겹쌍둥이 출산 예정인 손누리 씨 부부에게 주고 싶었으나, 아내가 출산 과정에서 하반신 마비를 겪으며 축하금을 전달하기엔 애매한 상황이 되어 다른 방법을 구하고자 한다는 이야기를 전달받았다. 이를 통해 손누리 씨를 처음 만난 안정은 기자는 일련의 상황을 인터뷰해 보도했고, SBS에서도 해당 보도를 송출했다. 보도의 영향력은 뉴스를 본 네티즌들이 블로그와 맘카페로 전달하며 더 크게 번졌다. 부부의 긴급복지 지원을 담당했던 청주시 공무원들이 자투리 월급을 모았으며, 충청북도 어린이집 연합회에서도 기탁금을 마련하는 등 지역의 곳곳에서 후원금 문의가 빗발쳤다.
안정은 기자는 지역에 밀착한 뉴스를 만드는 과정을 통해 지역민을 도울 수 있고 이롭게 만들 수 있다는 자부심을 얻었다고 말했다. 이어 다양한 사건의 정확한 정보 전달도 뉴스의 중요한 가치이지만, 세상을 좀 더 따뜻하게 만들 수 있는 기사를 생산하는 것도 언론인의 역할이라며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2부의 포문을 열었다.
재난·재해 상황 속 공영방송의 역할
KBS청주의 송국회 기자는 호우가 내렸던 지난 8월 신속한 보도로 지역민에게 재난 상황을 알렸다. 오송 지하차도 참사가 발생한 이후에도 참사의 경위를 꾸준히 추적하고 보도하며 수신료의 가치를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송국회 기자는 방송통신발전 기본법 제40조에 재난방송을 하는 경우 “재난상황에 대한 정보를 정확하고 신속하게 제공”해야 하며 “재난지역 거주자와 이재민 등에게 대피·구조·복구 등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해야 함이 명시되어 있음을 알렸다. 특히 한국방송공사(KBS)는 재난방송 주관사로 명시되어 있기까지 하다. 책임지고 재난방송을 하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재난 상황에 관련된 업무 소관 부처나 지자체장 등에게 관련 정보를 요구할 권한도 있다. 이를 바탕으로 KBS는 재난방송을 위한 인적·물적·기술적 기반을 마련해야 하고 모의 훈련도 해야 한다. 2016년에는 본사에서 재난 미디어 센터가 출범하기도 했다.
송국회 기자는 재난방송 체제가 가동되면 이를 위한 목적을 꼭 달성해야 하며, 호우가 내렸던 올해 재난방송의 목적은 ‘피해 최소화’였다고 말했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피해가 발생하고 있거나 발생할 것으로 예상이 되는 곳들을 보여주며 지역민들이 빨리 대피를 해야 한다고 인지시키는 것이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재난보도는 현장의 기자들도 그렇지만 촬영 기자나 오디오 스탭들 모두에게 힘든 일이지만, 재난방송만큼은 책임감과 사명감을 다해야 한다는 의식이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오송 지하차도 참사를 막지 못했다며 자책하기도 했다. 송국회 기자는 “지자체에게 제대로 대응을 했는지, 그것이 부실하지는 않았는지 지적하는 일을 하면서도 왜 우리는 더 빨리 보도하지 못했을까”라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
방송통신발전 기본법에 따르면 재난방송을 하는 방송사는 공신력 있는 기관의 정보를 내보내야 하고, 그렇기에 정부에 정보를 의존한다고 설명했다. 현장에서 정보를 먼저 파악할 수도 있지만 이것이 오버가 될 수도 있고, 잘못된 오버는 재난현장에 큰 혼란을 줄 수 있기에 팩트체크에 신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8월 15일에 있었던 오송 참사의 경우에도 KBS청주는 전날인 14일부터 24시간 재난방송 체제에 있었다. 하지만 임시 제방이 무너질 것이라는 예상은 아무도 하지 못했기에 새벽부터 기자들이 현장에 있었음에도 재난을 막지 못했다고 말했다. 송국회 기자는 “우리가 먼저, 혹은 어떤 방송사든 주변에서 현장 연결을 하고 있었다면, 시민 제보가 조금 더 빨리 캐치되어 중계를 했다면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라며 뼈 아픈 반성을 했음을 밝혔다.
당시 KBS청주가 현장 연결로 보도한 기사는 134건이라고 한다. 참사 이후인 16일과 17일 보도에는 여러가지 부실과 관련된 내용들이 주로 보도됐다. 송국회 기자는 이번 참사를 계기로 우리가 평상시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제대로 대비는 하고 있는지에 재난방송 포인트가 맞춰져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오송 참사 이후에도 잠깐의 국지성 호우로 CBS 앞 도로가 침수되는 일이 있었다. 워낙 빨리 침수된 탓에 현장 중계를 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송국회 기자는 이런 상황을 얼마나 빨리 알아채고 현장에 갈 수 있는지, 시시각각 닥쳐오는 재난에 대한 시스템 정비가 숙제가 됐다고 했다.
재난 유형이 달라지며 지자체에서도 평상시 배수로나 둑을 잘 관리하는 등의 일이 과제가 됐다. 송국회 기자는 이런 과제를 기사를 통해 던지고, 재난 당국이 인식하게끔 하는 것이 언론사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송국회 기자는 재난방송의 가치가 KBS의 현재 가치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만큼 만연한 재난에 얼마나 빨리 대처할 수 있는지가 KBS의 고민이고 숙제라는 말로 강연을 마쳤다.
권력을 감시하는 탐사보도의 힘
충북인뉴스 김남균 편집국장은 김영환 충북지사의 부적절한 참사 대응과 부동산 문제를 꾸준히 보도했다. 이에 충청북도는 충북인뉴스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며 재갈 물리기를 시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김남균 국장은 탐사 보도의 힘을 보여주기 위해 연단에 올랐다.
김남균 국장은 복사-붙여넣기만으로 하루에 수십 개의 기사 생산이 가능한 지금, 충북에만 똑같은 기사를 쓰는 언론사가 200개나 필요하겠냐고 반문하며 강의를 시작했다. 그의 주장은 “정확한 기사 하나만 있어도 된다”였다. 따라서 충북인뉴스는 남들이 안 쓰는 자신들만의 기사를 쓰겠다고 말한다. 이들의 지향점은 지역에 있는 사회적 약자의 이야기를 담고, 권력에 대한 탐사 고발 워치독을 하자는 것에 있다. 최근엔 이런 지향점 때문에 고발을 당하는 경우도 생겼다. 포럼 며칠 전에도 충청북도교육청은 충북인뉴스가 윤건영 교육감의 ‘호상’ 발언을 왜곡했다며 명예훼손으로 고발했고, 그 이전엔 김영환 도지사 의혹과 관련된 보도로 충청북도가 고발을 했다. 김남균 국장은 피고발 전문 매체가 되어버렸다며 우스갯 소리를 하기도 했다.
화제가 되었던 김영환 도지사 시리즈 보도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을까? 그것은 역시나 ‘제보’였다. 올해 3월, 김남균 국장은 정치권 관계자로부터 김영환 지사가 한 순간에 많은 부채를 갚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 부채를 어떻게 해결했는가에 대한 의심을 했고, 이 의심을 파헤치다보니 관련 탐사 보도를 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김남균 국장은 권력 감시에서 중요한 것은 팩트보다 의심이라고 하기도 했다. 의심을 100% 해소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의심이 합리적이라면 보도할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아직까지도 김영환 지사의 부동산 문제나 참사 대응은 추적해나가는 과정이고 끊임없이 의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오히려 모든 의심에 완전히 장담할 수 없으면 이의를 제기하지 말라는 것 자체가 억압이라며 합리적 의심을 모두 가짜 뉴스 취급하는 지자체의 행보를 비판했다.
김남균 국장은 권력자들이 언론사를 입막음하기 위한 손쉬운 방법으로 협박을 한다고 말했다. 언론사의 돈줄이라고 할 수 있는 광고를 끊어버리고 이후 다시 줄 것처럼 유혹하며 협박을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통하지 않으면 법적 대응을 하고, 최후의 수단으로는 신문사를 통째로 사버린다. 김남균 국장은 충북인뉴스에도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해 장내를 술렁이게 했다. 그럼에도 그는 “충북인뉴스는 지속해서 김영환 지사와 또 다른 지역의 권력자에 대해 뒤쫓을 것”이라며 포부를 밝혔다.
더 가까이, 더 깊이 다가가는 보도
충북기자협회는 ‘2023년 2분기 이달의 기자상’ 수상자로 MBC충북 조미애 기자를 선정했다. 조미애 기자와 이채연 기자가 보도한 ‘검은 속삭임 “널 구해줄게”’가 좋은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두 기자는 미성년 성착취 남성들을 어플로 유인해 직접 만나 이들의 수법을 폭로하고, 형사처벌 과정의 문제점과 낮은 형량을 짚어냈다.
조미애 기자는 해당 기사를 위해 ‘미성년자 의제 강간죄’의 혐의를 집중해서 분석했다고 한다. 이 보도에서는 ‘헬퍼’라는 용어가 나오는데, 이는 가출 청소년들을 유인해 숙식을 제공해주는 등의 도움을 주겠다고 하는 사람들을 지칭한다. 조미애 기자는 관련 기관의 자문을 받아 SNS에 청소년인 것처럼 프로필을 올렸고, 다섯 시간 만에 수십 통의 메시지를 받았다고 한다. 이후 이채연 기자와 함께 다섯 명을 실제로 만나 취재했다.
조미애 기자는 ‘헬퍼’들의 착취를 기획하게 된 계기를 소개하기도 했다. 2021년 이부 오바로부터 성폭력을 당했으나 이것이 사랑으로 포장되어 강간죄 성립이 되지 않은 케이스를 취재했던 것이 그 계기라고 한다. 강간죄가 성립되려면 폭행이나 협박이 있어야 하는데, 소위 말하는 그루밍 성범죄는 이것이 성립하기 어렵다. 따라서 ‘미성년자 강간죄’는 무기징역까지 가능하고 양형 기준 자체가 높지만, ‘미성년자 의제 강간죄’는 2년 6개월-5년까지가 기본 형량으로 정해져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여러 번 범행이 일어나도 입증 자체가 쉽지 않고, 대부분 집행유예로 풀려난다. 이에 조미애 기자는 폭행과 협박이 없다는 이유로 기본 형량으로 명시된 징역형조차 제대로 처벌되지 않는 실정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꼈다고 전했다.
조미애 기자가 검증하고 싶었던 것은 다섯 가지였다고 한다. 미성년자 의제 강간죄는 ①집행유예가 대다수인가 ②그루밍 성범죄의 경우 오프라인에서 지인에 의해 이루어지는가 ③ 13세 미만의 어린 아이들을 주된 대상으로 하는가 ④ 양형 기준 기본형보다 낮은 형량인가 ⑤ 집행유예를 선고받는 이유가 합의 때문인가 이 다섯 가지를 검증 대상으로 삼아 조미애 기자는 이채연 기자와 함께 5년 치 미성년자 의제 강간죄 700여 건을 전수조사했다. 분석 결과 실제로 사건의 70%가 집행유예를 받았다. 최초 미성년자 의제 강간 발생 이후로 아이가 어느정도 문제의식이 생겨 거절했을 때 감금 등의 범죄로 이어지는 경우까지 합쳐도 집행유예는 절반이 넘는다고 말했다. 가해자는 오프라인으로 알고 지냈던 지인보다 SNS를 통해 비대면으로 만난 사람이 4배 더 높게 나왔다. 피해자의 평균 나이는 13.2세로, 13세에서 16세 미만이 70%에 달하는 수치였다. 가해자들이 기본형이 미치지 못하는 이유로는 예상대로 합의가 컸다. 합의한 사람의 96.4%가 집행유예를 받았다. 조미애 기자는 변호사 사이에서도 성범죄는 합의를 하면 무조건 집행유예로 풀려날 수 있다는 공식이 암암리에 존재한다고 말했다.
현장 취재 전 데이터 분석을 마치고, 이런 분석을 토대로 기획보도팀은 현장 취재에 나섰다고 전했다. 비대면으로 접근하는 성인이 많기에 청주에 거주하는 16세와 15세로 프로필을 만든 조미애·이채연 기자는 헬퍼들과 SNS로 이야기를 나눴다. 자칭 헬퍼들은 조건 만남이나 유사성행위 가능 여보, 콘돔 없는 성행위 여부 등을 서슴없이 물었다. 조미애 기자는 청소년들이 쉽게 범죄에 노출될 수 있는 환경을 직접 겪으며 위험이 상당히 가까이에 있다는 것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꼈다고 전했다. 취재를 하며 성인들이 오히려 피해 아동을 탓하는 경우를 보기도 했다고 한다. 왜 그런 SNS를 하느냐, 위험한 거 알면서 왜 만나러 가느냐, 왜 기프티콘을 받느냐 등. 이런 수많은 ‘왜’를 만나며 조미애 기자는 오히려 작정하고 접근하는 어른들을 왜 뿌리치지 못했냐고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런 선입견이 재판에서도 반영되고 있다며 문제의식을 전했다.
조미애 기자는 “우리의 보도가 사회의 선입견을 부술 수 있기를 바란다”며 2부 마지막 강연을 마무리했다.
○ 운영 : 지역언론, 혁신을 꿈꾸다
35년째 늘 새로운 옥천의 저널리즘
1989년 창간한 옥천신문은 지역의 공공성을 지키며 언론의 순기능을 실천하고 있다. 황민호 대표는 신문 발간 이외에도 옥천 취재 기자 체험 프로그램 <옥천저널리즘스쿨>, 주민들이 만드는 공동체 라디오 <OBN>, 면 단위 마을신문 <청산별곡> 등을 기획하고 실천하며 꾸준히 새로움을 만들어냈다. 35년째 늘 새로운 옥천의 저널리즘을 만드는 비결에 대해 들어보았다.
지난 9월 25일, 옥천역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와 ‘옥천장애인자립생활센터’가 장애인 이동권 투쟁을 벌였다. 12시간이 넘는 시위와 집회가 이어졌다. 그러나 보도는 나오지 않았다. 물리적인 충돌이 야기됐고 심각한 상황도 있었으나, 모든 일들은 뉴스에 나오지 않았고 이로써 없는 일이 됐다. 황민호 대표는 해당 투쟁에 대해 “이들은 일상이 재난인 사람들이다. 이들이 참다 못해 투쟁을 하는데 옥천신문을 제외하고는 그 어떤 신문에도 나오지 않는다. 언론에 대한 불신이 이런 데서 쌓이는 것이다.”라며 일갈했다.
황민호 대표는 지역에서는 ‘밀착’이 가장 혁신이라고 말했다. 주민들의 삶에 밀착해야 제보나 민원이 일상적으로 다가온다는 것이다. 이런 주민들의 ‘현미경 제보’로 옥천신문에서 쓰는 기사는 단독이나 특종을 붙이지 않아도 다른 곳에서 다루지 않기 때문에 늘 단독이고 특종이다. 이런 이유로 옥천신문은 재정의 절반이 구독자들의 구독료라고 한다. 대한민국에 이런 언론사는 옥천신문 하나일 것이라고 추측한다. 황민호 대표는 옥천신문의 구독 해제 사유가 대부분 ‘사망’이라며 이들은 죽을 때까지 옥천신문을 본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황민호 대표는 옥천신문의 콘텐츠가 혁신이라는 말을 붙이기는 어렵다고 했다. 원칙대로, 기준대로, 학교에서 배운대로 실천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많은 언론사가 원칙과 기준을 떠나 네이버에 검색이 되기 위해 혈안이며, 유투브 구독자와 뷰 수에만 목을 맨다고 비판했다. 황민호 대표는 “우리 지역에서 발행한 뉴스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질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네이버 뉴스 카테고리에 ‘옥천’을 검색하면 대부분 보도자료를 받아쓴 기사들만 나온다. 황민호 대표는 이것이 ‘뉴스’가 맞는가에 대해 의문을 가지며, 진정한 뉴스란 “주민과 독자를 만나 피와 땀 흘려 취재한 것”이라고 말했다. 작년에 발행을 시작한 면 단위 마을신물 <청산별곡(현 주간영동)>도 ‘진짜 뉴스’를 보도하는 신문이 없기 때문에 시작했다고 밝혔다. 특히 영동군에는 주재 기자는 있어도 취재 기자는 없다며 군청 앞에서 삭발 시위를 해도 보도되지 않는 현실을 지적했다.
정론지 충청리뷰의 도전
충청리뷰는 1994년 발행을 시작한 충북의 대표 정론지이다. '작지만 강한 신문'을 선언한 충청리뷰의 이재표 편집국장은 종합미디어 구축에 도전하고 전문기자클럽을 꾸리는 등 언론의 가치를 위해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이재표 국장은 자신의 원래 장래희망이 ‘시인’이었음을 밝히며 글로 먹고 살기 위해 기자가 됐다는 이야기로 강연을 시작했다.
방송사에서 마을 신문으로, 마을 신문에서 충청리뷰로 입사와 퇴사를 오가던 이재표 국장은 충청리뷰 입사 당시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신문은 기호 상품이고, 충청리뷰는 더 이상 팔리지 않는 상품이 되었기 때문이다. 팔리지 않는 상품을 언제까지 만들어야 하는가 고민하던 그는 다른 모델을 찾고 싶어 마을 신문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행성 B를 찾아내 결국은 충청리뷰와 함께 B로 이주하겠다는 큰 꿈을 갖고서. 결국 그는 충청리뷰로 돌아왔다. 하지만 “신문을 팔지 말고 가치를 팔자”라는 생각과 함께 돌아왔다고 말했다. 당시 이재표 국장은 충청리뷰 측에 주 2일 근무, 전 직원 동일 임금, 개간 또는 월간으로 전환한 출판업 부활을 제안했다고 말했다. 신문을 구독 형태가 아니라 서점에서도 팔고, ‘빅이슈(노숙자를 돕되 노동을 통해 도와주려는 공익적 목적을 모토로 하는 잡지)’처럼 청주 시내에서 일자리를 창출하는 방식이라고 설명을 덧붙였다. ‘전문기자클럽’도 이재표 국장이 고안한 새로운 시도였다. 글 잘 쓰는 왕년의 기자들을 충청리뷰로 불러모으자는 취지였다.
최근엔 모든 이들이 주목할 만한 새로운 시도를 준비하기도 했다. ‘검찰 특활비 보도’였다. 이재표 국장은 <충청리뷰, 뉴스타파와 함께 ‘검찰 금고’ 연다>라는 기사를 통해 뉴스타파와 함께 검찰 예산 공동 취재를 진행하고 있음을 알렸다. 하지만 이 문제와 관련해 회사 내부에서 사건이 있었고, 이로 인해 사표를 결심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지금은 본사의 기자들과 의기투합해 함께 투쟁하기로 했다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그는 다음날 충청리뷰에 실릴 자신의 칼럼 <할 말>을 낭독하며 강연을 마쳤다. 해당 칼럼에서는 검찰 예산 검증 보도에 대해 모든 사내 구성원이 동의에 이르지 못해 보도를 시작하지 못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후 포럼 다음날인 27일, 이재표 국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사측으로부터 보직해임 처분을 받았다고 알렸으며, 칼럼 <할 말>은 삭제된 채 신문이 발행됐다. 10월 4일, 충청리뷰는 이재표 국장에 대한 보직해임을 철회했다. 부디 이재표 국장을 비롯한 충청리뷰 취재기자들의 활동이 위축되지 않고 충청리뷰의 검찰 예산 검증 보도가 무사히 진행되길 바란다.
건강한 지역언론, 어떻게 만들까
긴 포럼의 대장정은 충북민주언론시민연합 계희수 활동가가 마무리를 지었다.
계희수 활동가는 저널리즘을 공부하며 큰 꿈을 안고 기자가 됐지만, 현실은 척박했음을 지적했다. 중요한 지역 이슈에 대해 열심히 뉴스를 만들어도 사람들인 네이버를 장식하는 서울권의 사소한 이야기에 더 주목한다는 것이다. 계희수 활동가는 이를 통해 전국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언론의 수혜를 공평하게 받지 않음을 느꼈다고 말했다. 특히 지역 주재 기자를 두지 않는 언론사들이 태반이며, 서울 수도권의 뉴스로 지면을 채우면서도 ‘중앙언론’, ‘전국권 언론’이라고 칭하는 언론사들을 비판했다. 이에 계희수 활동가는 뉴스 구독을 고민할 때 “내가 사는 곳의 뉴스를 이 언론사는 얼마나 다루고 있는가”를 중점적으로 봤으면 한다고 밝혔다.
2021년, 청주시 북이면의 한 마을에서는 인근 소각장에서 발생한 유해물질로 집단 암이 발병하는 등의 문제가 있었다. 이에 대해 지역에서 많은 투쟁이 있었고, 많은 언론이 기사화했지만 환경부에 닿지는 않았다. 지역의 뉴스가 중앙부처까지 도달하기 어렵다는 것을 방증하는 사례였다. 전국권 뉴스인 한국일보를 보면 “소각시설과 인체 카드뮴 농도 간 인과성이 있다고 보기엔 어렵다”, “소각시설과 관련성이 높다고 알려진 혈액암이나 폐암 등은 큰 영향을 받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환경부의 발표를 그대로 써놓았다. 주민들과 함께 투쟁하던 관련 단체들은 환경부의 발표를 인정하지 않았음에도 이들의 이야기는 실리지 않았다. 본사 KBS 뉴스9도 킥보드 단속 첫날임을 알리는 기사는 나갔지만, 북이면 소각장 이슈는 보도되지 않았다. 하지만 KBS청주의 기사는 달랐다. 환경부의 발표에 대해 주민들이 이에 항의하고, 퇴장당하는 장면까지 담긴 소식이 상세히 보도됐다. 계희수 활동가는 이것이 실제로 취재를 오는 언론과 그렇지 않은 언론의 핵심적인 차이라고 말했다.
계희수 활동가는 왜 우리의 이야기가 전국뉴스에는 나오지 않는지 의구심을 보여야 하며, 지역언론을 사회 인프라로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네이버나 유튜브가 사실상 뉴스를 데스킹하고 있는 현실에서, 전국적으로 화제가 되고 조회수가 많이 나오는 것들만 전달되는 구조 속에서 지역언론이 생산하는 콘텐츠를 얼마나 잘 받아들이고 선별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이에 우리부터 지역언론도 사회 인프라라는 인식을 하고 모든 주체들이 다양한 차원의 방법을 고민해 건강한 공론장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계희수 활동가는 ‘뉴스 사막화’ 개념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했다. 언론사들이 사라지며 뉴스가 고갈되는 지역이 생긴다는 말이다. 그는 이것을 재난에 준하는 위기 상황으로 보고, 적극적으로 지역언론의 존립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충북민언련 20주년 기념 좋은 콘텐츠 포럼 <지역언론의 새 판을 만들다>를 통해 좋은 뉴스와 프로그램을 만났고, 메마른 지역에서도 단비가 되어주는 언론인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런 긍정적인 재생산이 반복된다면 지역민들도 지역언론에서 희망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충북민언련은 ‘단비 언론인’들과의 연대를 통해 건강한 지역언론을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지역언론의 새로운 판을 짜는 사람들
충북민주언론시민연합이 창립 20주년을 맞아 지역언론의 새로운 판을 짜는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지난 9월 26일 충북시청자미디어센터에서 진행된 좋은 콘텐츠 포럼 <지역언론의 새 판을 만들다>에서는 척박한 환경에서도 좋은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지역의 언론인들이 직접 연사로 나섰다. 포럼은 △콘텐츠 △보도 △운영 세 부문으로 나눠 지역민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 혁신 사례들을 공유했다.
○ 콘텐츠 : 시사·다큐, 지역방송의 가치를 보여주다
지역 공영방송과 PD 저널리즘의 가치
KBS청주 김효진 PD가 포럼의 포문을 열었다. 김효진 PD는 녹록지 않은 지역 시사 다큐 제작 여건에도 <다큐공작소>, <한끼시사> 등의 프로그램을 꾸준히 만들며 PD 저널리즘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김효진 PD는 “페미니즘 이슈는 꾸준히 화제가 되고 있음에도 방송에서 우회적으로만 다룰뿐 당사자의 목소리를 들려준 적은 거의 없다”며 암암리에 금기시 된 방송사의 페미니즘 회피를 비판했다. 이런 문제의식을 정면 돌파하고자 김효진 PD는 페미니스트들을 불러 모아 토크 형식으로 <한끼시사>를 만들기도 했다. 해당 편에서는 청주 중학생 성폭력·아동학대 사건 같은 성폭력 이슈나 충북의 성평등 지표를 함께 보며 깊이 있게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KBS청주는 네 명의 PD가 시사 프로그램을 꾸려가고 있다. 김효진 PD는 시사 프로그램의 포맷을 따로 두지 않고 현장과 당사자를 만나고 있다고 말했다. ‘수어’를 다뤘던 <다큐공작소>의 ‘소리 없는 세계’는 세상에 나오기까지 4개월이 걸렸다고 한다. 수어를 다루기 위해서는 PD부터 수어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하기에 직접 배우는데 시간을 들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편집 또한 수어 통역사와 함께 했다고 한다. 최근 화제가 되었던 청주동물원의 갈비뼈 사자 구출기 ‘안녕 바람!’도 두 달 정도가 걸렸다. 김효진 PD는 장기간에 걸쳐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었던 이유는 제작 기간에 정해진 선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를 통해 긴 호흡으로 지역 이야기를 담아도 적극적인 관심이 있고, 지역민들도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KBS청주총국은 올해에 ‘좋은 프로그램 상’, ‘좋은 보도 상’ 등 많은 상을 받았다. 김효진 PD는 이런 저력이 30분짜리 다큐를 매주 만드는 것에서 나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7월 15일, 폭우가 내리던 날에도 네 명의 피디는 각자의 아이템 준비를 잠시 뒤로 하고 참사 현장으로 향했다. 밤새 장례식장과 오송 참사 현장을 촬영했다. 이를 중심으로 여러 피해에 대해 시간대 별로 정리하고 취재했다. 많은 방송 팀이 있었지만 이들은 청주에 사는 사람들이기에 제일 일찍 가고, 제일 늦게까지 자리를 지키며 보다 깊이 있는 취재를 할 수 있었다. <다큐공작소>에서는 같은 날 산사태로 숨진 청년의 죽음을 최초 보도하기도 했다. 관련 기관에서는 파악조차 되지 않은 사건이었지만, 취재가 시작되니 담당자들도 부랴부랴 유가족에게 연락했다. 안타까운 일이 많았지만, 누구보다 자세한 보도를 하며 김효진 PD는 지역에서 일한다는 것에 대한 효능감과 쓸모를 느꼈다고 말했다. KBS 본부의 시사 프로그램인 <시사직격>에서도 수해 피해를 다뤘지만, 오송 참사는 하나의 사례로만 등장했다. 결국은 전국적인 이슈, 기후 문제라고만 다뤄진 것이다. 하지만 지역에 사는 우리는 오송 참사가 재난 시스템 컨트롤타워의 부재임을 안다. 국토관리청과 충청북도, 청주시가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것도 지역에 사는 사람이기에 취재로 밝힐 수 있었다.
김효진 PD는 함께 시사 프로그램을 만드는 네 명의 PD 모두가 충북 출신의 사람이 아니라고 말했다. 이들은 지역 색이 뚜렷하지 않은 충북을 보며 충북이 가진 매력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지만, 결국 현장에 답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더불어 지역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것의 힘을 느꼈다. 그는 지역의 언론인들이 지치지 않고 현장에서 기쁨을 얻었으면 좋겠다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가장 진보적인 콘텐츠, 지역에서 전국으로
MBC충북엔 정규직 여성 PD가 딱 한 명 있다. 바로 김우림 PD이다. 김우림 PD는 여성 출연자들이 나오는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PD가 본인 한 명 뿐이라며 다양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위해서는 여성 언론인의 존재와 역할이 중요함을 체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우림 PD의 첫 다큐멘터리는 <아이엠비너스>이다. 이 프로그램은 여성의 성에 대한 다큐멘터리로, 가부장제가 은폐한 여성의 몸을 상세히 다뤘다. 이를 바탕으로 2년 후 <성교육은 처음이라>를 만들었다. <아이엠비너스> 제작 이후 GV와 강연을 다니며 지역의 소도시로 갈 수록 성교육이 양극회됨을 느꼈다. 이에 대한 문제의식을 발전시켜 지역언론의 역할로 교육 격차를 줄이기 위해 포괄적 성교육 가이드라인에 따라 <성교육은 처음이라>를 제작했다. <어스온어스>는 호주와 제주를 여행하는 코로나 세대 청년들의 이야기인데, 모두에게 친절한 여행은 무엇인가를 고민하며 만들었다고 한다. 세 가지 프로그램 모두 방송통신위원회의 제작 지원을 받은 콘텐츠들이다. 김우림 PD는 재원도 사람도 부족한 제작 환경을 이야기하며 지원 사업에 응모해 콘텐츠를 만들 수밖에 없는 현실을 지적했다. 특히 아직까지도 터부시되는 ‘성’에 대한 프로그램을 만들며 방송사 내부에서 많은 우려의 소리를 들었고, <아이엠비너스>가 화제된 이후에도 그 우려는 크게 변하지 않았음을 토로했다. <성교육은 처음이라>에는 성적 정체성과 성적 지향에 대해 이야기했고, <어스온어스>에서는 성소수자로 커밍아웃을 한 사람이 주인공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우림 PD는 이런 과정이 제작진들에게도 문제의식을 심화하는 과정이었다고 전한다.
김우림 PD는 PD 최종 면접 기획안으로 자신이 주인공인 다큐멘터리 기획안을 제출했다. 아무런 연고가 없는 청주에 온 자신을 애니메이션 <마녀배달부 키키>에 빗댄 내용이었다. 이 애니메이션은 진짜 마녀가 되기 위해 연고 없는 곳에서 사람들에게 기쁨과 사랑을 전달하며 성장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담았다. 김우림 PD는 애니메이션의 OST를 틀며 MBC충북의 많은 제작진이 충북의 마녀배달부 키키가 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PD 겸 앵커로, 깊이 있는 라디오 시사 프로의 비결
CBS의 이수복 PD는 마이크를 잡자마자 올해 12월 31일 은퇴한다는 소식을 밝혔다. 그는 현재 CBS충북 <시사포워드>의 PD 겸 앵커로, 방송 생활은 30여 년, <시사포워드>는 15년 째인 배테랑이다.
이수복 PD는 “모든 것이 검열이고 모든 것이 투쟁이었”던 지역 여성 PD 1호이기도 하다. 방송 연결을 약속한 인터뷰도 생방송 당일 앵커가 여자라는 이유로 취소되는 등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가로막혔던 것을 시작으로 그는 지역의 여성운동과 합류하고 공부할 수 있었다고 한다. 청주를 떠나본 적 없는 자신을 지역의 ‘고인물’이라고 자칭한 이수복 PD는 일부러 이름 없이 여성 잡지를 만들기도 했다고 밝혔다. 앞선 두 PD와는 다르게 지역에 아는 사람이 너무나도 많은 이수복 PD는 자신의 흔적이 남는 것이 싫다며 포럼 참석 여부마저도 고민했다고 한다. 자신의 흔적과 연결된 이들이 해오는 비난과 선거철이면 더 심해지는 압박으로 지역의 유무형 관계들과 일부러 거리를 두었다.
그럼에도 그는 30년 동안 자신을 이끌어준 것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중앙언론에서 다루지 않고 살피지 않는 지역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자 했던 것이 30년을 버티게 했다. 실제로 이수복 PD는 1993년 발생한 ‘우암산 상가 붕괴 사건’ 때도, 2000년 ‘CBS 장기 파업’ 때도 현장을 지켰다. 현재는 구룡산 난개발을 막기 위한 투쟁에도 함께 하고 있다. 반면, 이런 문제를 <시사포워드>에서 크게 다루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남편이 구룡산살리기시민대책위원회 공동대표이기 때문에 이해충돌방지법에 저촉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이수복 PD는 앵커와 PD를 병행하게 되며 매일 라디오 앞을 지키는 자신을 대신해 어떤 방식으로든 로컬의 이야기를 담아달라고 언론인들에게 당부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위기를 맞은 언론에 대해 이야기했다. 열 달을 무노동 무임금으로 파업했던 이수복 PD는 당시 상황을 이야기하며 힘든 상황에서 오히려 제3자가 언론의 어려움을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고 말했다. 지금의 위기를 기회 삼아 더 나은 미래를 그려볼 수 있기를 바란다.
지역방송에 옴부즈맨 프로가 필요한 이유
CJB청주방송 방찬희 PD는 충북 지상파 3사 중 유일하게 시민 참여형 비평 프로를 만들고 있다. 10년 째 꿋꿋하게 옴부즈맨 프로를 제작하고 있는 방찬희 PD는 시청자 평가 프로그램을 만드는 이유로 ‘벌금’을 가장 먼저 떠올렸다고 한다. 방송법상 매주 60분 이상의 시청자 평가 프로그램을 방송하지 않으면 방송사는 큰 벌금을 내야 하기 때문이다. 방찬희 PD는 의무적으로라도 시청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장치를 마련하기 위한 것 같다며 강연을 시작했다.
CJB청주방송은 2011년 옴부즈맨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초창기에는 충북민언련의 이수희 대표도 평가원으로 함께 했다. 옴부즈맨 프로그램은 방송 송출만으로 일이 끝나지 않는데, 방 PD는 시청자 평가원이 방송 프로그램과 뉴스에 대한 공개 비평을 하면 방송 이후 해당 원고를 심의 부서로 전달한다고 밝혔다. 심의 부서에서는 해당 원고를 각 방송 부서로 전달해 피드백 자료로 활용하고, 방송통신위원회에 보고한다. 그는 이런 방식이 보도 데스킹과 다른 점은 ‘시청자의 입장에서 프로그램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전했다. 비슷한 업무를 수행하는 집단에서 하는 내부 시선은 한계가 있으므로 외부의 중립적인 시선에서 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이다.
방찬희 PD는 모든 방송국이 시청자 평가 프로그램을 방송하지 않으면 벌금을 낸다고 이야기했지만, 이것이 지역으로 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고 말했다. CJB청주방송에서 자체적으로 시청자 평가 프로그램을 만들기 전에는 SBS에서 제작한 프로그램을 송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법적 의무만 해결할 뿐, SBS 방송에 대한 비평만 이뤄지기 때문에 정작 지역 시청자들에게 더 밀접한 프로그램들은 비평 대상조차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방찬희 PD는 월 1회 방송이지만 지역 민영 방송사 중 제일 먼저 시청자 평가 프로그램을 정규 편성한 것에 대해 작은 자부심이 있다고 밝혔다. 특히 <TV를 말하다>에서는 시청자가 직접 출연한다. CJB청주방송은 충북시청자미디어센터와 협업해 직접 비평에 참여하는 시청자 비평단을 구성했다.
방찬희 PD는 해마다 모집하는 비평 단원에 많은 지역민이 참여하길 독려하면서도 모든 방송사가 시청자 미디어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고 밝혔다. 옴부즈맨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지만 이것이 얼마나 실효성이 있는가에 대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장 눈에 띄는 변화가 작을지라도 그는 지역 방송사와 지역민이 함께 코너를 꾸리는 것에 의의가 있으며, 이를 통해 서로가 조금이라도 가까워졌으면 한다고 마무리했다.
젊고 새로운 선거 콘텐츠
MBC충북의 이지현 기자는 지방선거 당시 청년면접단을 꾸려 후보자를 직접 검증하는 <청년면접> 프로그램을 기획·제작해 큰 호평을 받았다. 그는 ‘보통 청년들은 면접을 당하는 입장인데, 이를 뒤집어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에서 해당 프로그램이 비롯됐다며 프로그램 예고편과 함께 강연을 시작했다.
예고편의 마지막엔 ‘과연 청년들의 시장으로 합격할 수 있을까?’라는 멘트가 나온다. <청년면접>은 지난해 지방선거 이후에 방영된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이지현 기자는 이미 모든 시민의 단체장인 이 사람이 청년들의 단체장으로도 선출이 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고 한다. 특히 지난해에는 2030 청년들을 대변한답시고 나온 정치인들이 오히려 청년들이 원하는 담론과 의제를 더 묵살시키고 퇴보시켰다고 평가했다. 이런 상황에서 청년들이 진짜로 원하는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고, 이것이 지역 언론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지현 기자는 <청년면접> 이전에도 <청년, 정치를 묻다>라는 기획 보도를 했었다. 당시는 단체장을 선출하기 전이었고, 후보자였던 김영환·노영민 후보를 불러 압박 면접을 진행했다. 하지만 이들이 어떤 가치관을 갖고 있고, 이들의 정책이 청년들에게 실효성이 있는지를 묻는 과정에서 지원자들의 이야기가 많이 들어갔다고 평가했다. 면접관보다 지원자의 이야기가 더 많은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면접관으로 나선 청년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계기였다고 한다. 이후 <청년면접>에서는 예능적 요소를 감미하고, 단체장 섭외보다도 면접관 섭외에 공을 들였다. 본인의 색깔이 뚜렷하거나, 그동안 목소리를 듣지 못했던 이들을 찾으려 노력했고, 그 결과로 지방선거 출마 경험자, 중학교 학생회장, 장애인, 연극배우, 자영업자들을 섭외했다. 가장 공을 많이 들인 코너로 <소수의견>을 꼽기도 했는데, 아무리 면접관 섭외에 공을 들여도 다루지 못한 이야기들이 많기에 이런 대상들을 찾아 인터뷰 후 VCR로 만들었다. <소수의견>에는 농사를 짓느라 빚더미에 오른 청년 농부, 자립 준비 청년, 중도입국 청소년, 경계성 지능인의 엄마, 스쿨미투 활동가의 이야기가 담겼다.
이지현 기자는 <청년면접>이 호평을 받긴 했지만, 내부에서는 환영 받지만은 못했음을 밝히기도 했다. 이지현 기자와 함께 제작했던 김대웅 기자 모두 데일리 아이템을 제작해야 하는 취재 기자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지역에 사는 청년들의 이야기를 단체장이 듣고 마음을 움직였으면 좋겠다는 일념 하에 새벽까지 힘들게 제작한 프로그램에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청년면접>을 계기로 청년들이 정치적 효능감을 갖게 된다면 그것이 우리의 존재 이유라며 1부의 막을 내렸다.
○ 보도 : 지역사회를 밝히는 보도의 힘
지역민의 삶을 바꾸는 보도의 영향력
보도 부문은 CJB청주방송 안정은 기자의 <겹쌍둥이 부부의 눈물> 리포트 영상으로 시작했다. 안정은 기자는 쌍둥이를 두 차례 출산한 뒤 하반신 마비 증세로 어려움을 겪는 손누리 씨 부부의 사연을 보도해 지역사회에 큰 울림을 주었다. 이번 포럼에서 안 기자는 해당 기사를 취재하게 된 배경과 후일담에 대해 말했다.
올해 3월, 충청북도 인구정책 팀장으로부터 전화를 받은 안정은 기자는 김영환 도지사가 공약으로 걸었던 출산육아 수당을 겹쌍둥이 출산 예정인 손누리 씨 부부에게 주고 싶었으나, 아내가 출산 과정에서 하반신 마비를 겪으며 축하금을 전달하기엔 애매한 상황이 되어 다른 방법을 구하고자 한다는 이야기를 전달받았다. 이를 통해 손누리 씨를 처음 만난 안정은 기자는 일련의 상황을 인터뷰해 보도했고, SBS에서도 해당 보도를 송출했다. 보도의 영향력은 뉴스를 본 네티즌들이 블로그와 맘카페로 전달하며 더 크게 번졌다. 부부의 긴급복지 지원을 담당했던 청주시 공무원들이 자투리 월급을 모았으며, 충청북도 어린이집 연합회에서도 기탁금을 마련하는 등 지역의 곳곳에서 후원금 문의가 빗발쳤다.
안정은 기자는 지역에 밀착한 뉴스를 만드는 과정을 통해 지역민을 도울 수 있고 이롭게 만들 수 있다는 자부심을 얻었다고 말했다. 이어 다양한 사건의 정확한 정보 전달도 뉴스의 중요한 가치이지만, 세상을 좀 더 따뜻하게 만들 수 있는 기사를 생산하는 것도 언론인의 역할이라며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2부의 포문을 열었다.
재난·재해 상황 속 공영방송의 역할
KBS청주의 송국회 기자는 호우가 내렸던 지난 8월 신속한 보도로 지역민에게 재난 상황을 알렸다. 오송 지하차도 참사가 발생한 이후에도 참사의 경위를 꾸준히 추적하고 보도하며 수신료의 가치를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송국회 기자는 방송통신발전 기본법 제40조에 재난방송을 하는 경우 “재난상황에 대한 정보를 정확하고 신속하게 제공”해야 하며 “재난지역 거주자와 이재민 등에게 대피·구조·복구 등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해야 함이 명시되어 있음을 알렸다. 특히 한국방송공사(KBS)는 재난방송 주관사로 명시되어 있기까지 하다. 책임지고 재난방송을 하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재난 상황에 관련된 업무 소관 부처나 지자체장 등에게 관련 정보를 요구할 권한도 있다. 이를 바탕으로 KBS는 재난방송을 위한 인적·물적·기술적 기반을 마련해야 하고 모의 훈련도 해야 한다. 2016년에는 본사에서 재난 미디어 센터가 출범하기도 했다.
송국회 기자는 재난방송 체제가 가동되면 이를 위한 목적을 꼭 달성해야 하며, 호우가 내렸던 올해 재난방송의 목적은 ‘피해 최소화’였다고 말했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피해가 발생하고 있거나 발생할 것으로 예상이 되는 곳들을 보여주며 지역민들이 빨리 대피를 해야 한다고 인지시키는 것이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재난보도는 현장의 기자들도 그렇지만 촬영 기자나 오디오 스탭들 모두에게 힘든 일이지만, 재난방송만큼은 책임감과 사명감을 다해야 한다는 의식이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오송 지하차도 참사를 막지 못했다며 자책하기도 했다. 송국회 기자는 “지자체에게 제대로 대응을 했는지, 그것이 부실하지는 않았는지 지적하는 일을 하면서도 왜 우리는 더 빨리 보도하지 못했을까”라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
방송통신발전 기본법에 따르면 재난방송을 하는 방송사는 공신력 있는 기관의 정보를 내보내야 하고, 그렇기에 정부에 정보를 의존한다고 설명했다. 현장에서 정보를 먼저 파악할 수도 있지만 이것이 오버가 될 수도 있고, 잘못된 오버는 재난현장에 큰 혼란을 줄 수 있기에 팩트체크에 신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8월 15일에 있었던 오송 참사의 경우에도 KBS청주는 전날인 14일부터 24시간 재난방송 체제에 있었다. 하지만 임시 제방이 무너질 것이라는 예상은 아무도 하지 못했기에 새벽부터 기자들이 현장에 있었음에도 재난을 막지 못했다고 말했다. 송국회 기자는 “우리가 먼저, 혹은 어떤 방송사든 주변에서 현장 연결을 하고 있었다면, 시민 제보가 조금 더 빨리 캐치되어 중계를 했다면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라며 뼈 아픈 반성을 했음을 밝혔다.
당시 KBS청주가 현장 연결로 보도한 기사는 134건이라고 한다. 참사 이후인 16일과 17일 보도에는 여러가지 부실과 관련된 내용들이 주로 보도됐다. 송국회 기자는 이번 참사를 계기로 우리가 평상시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제대로 대비는 하고 있는지에 재난방송 포인트가 맞춰져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오송 참사 이후에도 잠깐의 국지성 호우로 CBS 앞 도로가 침수되는 일이 있었다. 워낙 빨리 침수된 탓에 현장 중계를 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송국회 기자는 이런 상황을 얼마나 빨리 알아채고 현장에 갈 수 있는지, 시시각각 닥쳐오는 재난에 대한 시스템 정비가 숙제가 됐다고 했다.
재난 유형이 달라지며 지자체에서도 평상시 배수로나 둑을 잘 관리하는 등의 일이 과제가 됐다. 송국회 기자는 이런 과제를 기사를 통해 던지고, 재난 당국이 인식하게끔 하는 것이 언론사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송국회 기자는 재난방송의 가치가 KBS의 현재 가치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만큼 만연한 재난에 얼마나 빨리 대처할 수 있는지가 KBS의 고민이고 숙제라는 말로 강연을 마쳤다.
권력을 감시하는 탐사보도의 힘
충북인뉴스 김남균 편집국장은 김영환 충북지사의 부적절한 참사 대응과 부동산 문제를 꾸준히 보도했다. 이에 충청북도는 충북인뉴스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며 재갈 물리기를 시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김남균 국장은 탐사 보도의 힘을 보여주기 위해 연단에 올랐다.
김남균 국장은 복사-붙여넣기만으로 하루에 수십 개의 기사 생산이 가능한 지금, 충북에만 똑같은 기사를 쓰는 언론사가 200개나 필요하겠냐고 반문하며 강의를 시작했다. 그의 주장은 “정확한 기사 하나만 있어도 된다”였다. 따라서 충북인뉴스는 남들이 안 쓰는 자신들만의 기사를 쓰겠다고 말한다. 이들의 지향점은 지역에 있는 사회적 약자의 이야기를 담고, 권력에 대한 탐사 고발 워치독을 하자는 것에 있다. 최근엔 이런 지향점 때문에 고발을 당하는 경우도 생겼다. 포럼 며칠 전에도 충청북도교육청은 충북인뉴스가 윤건영 교육감의 ‘호상’ 발언을 왜곡했다며 명예훼손으로 고발했고, 그 이전엔 김영환 도지사 의혹과 관련된 보도로 충청북도가 고발을 했다. 김남균 국장은 피고발 전문 매체가 되어버렸다며 우스갯 소리를 하기도 했다.
화제가 되었던 김영환 도지사 시리즈 보도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을까? 그것은 역시나 ‘제보’였다. 올해 3월, 김남균 국장은 정치권 관계자로부터 김영환 지사가 한 순간에 많은 부채를 갚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 부채를 어떻게 해결했는가에 대한 의심을 했고, 이 의심을 파헤치다보니 관련 탐사 보도를 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김남균 국장은 권력 감시에서 중요한 것은 팩트보다 의심이라고 하기도 했다. 의심을 100% 해소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의심이 합리적이라면 보도할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아직까지도 김영환 지사의 부동산 문제나 참사 대응은 추적해나가는 과정이고 끊임없이 의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오히려 모든 의심에 완전히 장담할 수 없으면 이의를 제기하지 말라는 것 자체가 억압이라며 합리적 의심을 모두 가짜 뉴스 취급하는 지자체의 행보를 비판했다.
김남균 국장은 권력자들이 언론사를 입막음하기 위한 손쉬운 방법으로 협박을 한다고 말했다. 언론사의 돈줄이라고 할 수 있는 광고를 끊어버리고 이후 다시 줄 것처럼 유혹하며 협박을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통하지 않으면 법적 대응을 하고, 최후의 수단으로는 신문사를 통째로 사버린다. 김남균 국장은 충북인뉴스에도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해 장내를 술렁이게 했다. 그럼에도 그는 “충북인뉴스는 지속해서 김영환 지사와 또 다른 지역의 권력자에 대해 뒤쫓을 것”이라며 포부를 밝혔다.
더 가까이, 더 깊이 다가가는 보도
충북기자협회는 ‘2023년 2분기 이달의 기자상’ 수상자로 MBC충북 조미애 기자를 선정했다. 조미애 기자와 이채연 기자가 보도한 ‘검은 속삭임 “널 구해줄게”’가 좋은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두 기자는 미성년 성착취 남성들을 어플로 유인해 직접 만나 이들의 수법을 폭로하고, 형사처벌 과정의 문제점과 낮은 형량을 짚어냈다.
조미애 기자는 해당 기사를 위해 ‘미성년자 의제 강간죄’의 혐의를 집중해서 분석했다고 한다. 이 보도에서는 ‘헬퍼’라는 용어가 나오는데, 이는 가출 청소년들을 유인해 숙식을 제공해주는 등의 도움을 주겠다고 하는 사람들을 지칭한다. 조미애 기자는 관련 기관의 자문을 받아 SNS에 청소년인 것처럼 프로필을 올렸고, 다섯 시간 만에 수십 통의 메시지를 받았다고 한다. 이후 이채연 기자와 함께 다섯 명을 실제로 만나 취재했다.
조미애 기자는 ‘헬퍼’들의 착취를 기획하게 된 계기를 소개하기도 했다. 2021년 이부 오바로부터 성폭력을 당했으나 이것이 사랑으로 포장되어 강간죄 성립이 되지 않은 케이스를 취재했던 것이 그 계기라고 한다. 강간죄가 성립되려면 폭행이나 협박이 있어야 하는데, 소위 말하는 그루밍 성범죄는 이것이 성립하기 어렵다. 따라서 ‘미성년자 강간죄’는 무기징역까지 가능하고 양형 기준 자체가 높지만, ‘미성년자 의제 강간죄’는 2년 6개월-5년까지가 기본 형량으로 정해져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여러 번 범행이 일어나도 입증 자체가 쉽지 않고, 대부분 집행유예로 풀려난다. 이에 조미애 기자는 폭행과 협박이 없다는 이유로 기본 형량으로 명시된 징역형조차 제대로 처벌되지 않는 실정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꼈다고 전했다.
조미애 기자가 검증하고 싶었던 것은 다섯 가지였다고 한다. 미성년자 의제 강간죄는 ①집행유예가 대다수인가 ②그루밍 성범죄의 경우 오프라인에서 지인에 의해 이루어지는가 ③ 13세 미만의 어린 아이들을 주된 대상으로 하는가 ④ 양형 기준 기본형보다 낮은 형량인가 ⑤ 집행유예를 선고받는 이유가 합의 때문인가 이 다섯 가지를 검증 대상으로 삼아 조미애 기자는 이채연 기자와 함께 5년 치 미성년자 의제 강간죄 700여 건을 전수조사했다. 분석 결과 실제로 사건의 70%가 집행유예를 받았다. 최초 미성년자 의제 강간 발생 이후로 아이가 어느정도 문제의식이 생겨 거절했을 때 감금 등의 범죄로 이어지는 경우까지 합쳐도 집행유예는 절반이 넘는다고 말했다. 가해자는 오프라인으로 알고 지냈던 지인보다 SNS를 통해 비대면으로 만난 사람이 4배 더 높게 나왔다. 피해자의 평균 나이는 13.2세로, 13세에서 16세 미만이 70%에 달하는 수치였다. 가해자들이 기본형이 미치지 못하는 이유로는 예상대로 합의가 컸다. 합의한 사람의 96.4%가 집행유예를 받았다. 조미애 기자는 변호사 사이에서도 성범죄는 합의를 하면 무조건 집행유예로 풀려날 수 있다는 공식이 암암리에 존재한다고 말했다.
현장 취재 전 데이터 분석을 마치고, 이런 분석을 토대로 기획보도팀은 현장 취재에 나섰다고 전했다. 비대면으로 접근하는 성인이 많기에 청주에 거주하는 16세와 15세로 프로필을 만든 조미애·이채연 기자는 헬퍼들과 SNS로 이야기를 나눴다. 자칭 헬퍼들은 조건 만남이나 유사성행위 가능 여보, 콘돔 없는 성행위 여부 등을 서슴없이 물었다. 조미애 기자는 청소년들이 쉽게 범죄에 노출될 수 있는 환경을 직접 겪으며 위험이 상당히 가까이에 있다는 것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꼈다고 전했다. 취재를 하며 성인들이 오히려 피해 아동을 탓하는 경우를 보기도 했다고 한다. 왜 그런 SNS를 하느냐, 위험한 거 알면서 왜 만나러 가느냐, 왜 기프티콘을 받느냐 등. 이런 수많은 ‘왜’를 만나며 조미애 기자는 오히려 작정하고 접근하는 어른들을 왜 뿌리치지 못했냐고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런 선입견이 재판에서도 반영되고 있다며 문제의식을 전했다.
조미애 기자는 “우리의 보도가 사회의 선입견을 부술 수 있기를 바란다”며 2부 마지막 강연을 마무리했다.
○ 운영 : 지역언론, 혁신을 꿈꾸다
35년째 늘 새로운 옥천의 저널리즘
1989년 창간한 옥천신문은 지역의 공공성을 지키며 언론의 순기능을 실천하고 있다. 황민호 대표는 신문 발간 이외에도 옥천 취재 기자 체험 프로그램 <옥천저널리즘스쿨>, 주민들이 만드는 공동체 라디오 <OBN>, 면 단위 마을신문 <청산별곡> 등을 기획하고 실천하며 꾸준히 새로움을 만들어냈다. 35년째 늘 새로운 옥천의 저널리즘을 만드는 비결에 대해 들어보았다.
지난 9월 25일, 옥천역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와 ‘옥천장애인자립생활센터’가 장애인 이동권 투쟁을 벌였다. 12시간이 넘는 시위와 집회가 이어졌다. 그러나 보도는 나오지 않았다. 물리적인 충돌이 야기됐고 심각한 상황도 있었으나, 모든 일들은 뉴스에 나오지 않았고 이로써 없는 일이 됐다. 황민호 대표는 해당 투쟁에 대해 “이들은 일상이 재난인 사람들이다. 이들이 참다 못해 투쟁을 하는데 옥천신문을 제외하고는 그 어떤 신문에도 나오지 않는다. 언론에 대한 불신이 이런 데서 쌓이는 것이다.”라며 일갈했다.
황민호 대표는 지역에서는 ‘밀착’이 가장 혁신이라고 말했다. 주민들의 삶에 밀착해야 제보나 민원이 일상적으로 다가온다는 것이다. 이런 주민들의 ‘현미경 제보’로 옥천신문에서 쓰는 기사는 단독이나 특종을 붙이지 않아도 다른 곳에서 다루지 않기 때문에 늘 단독이고 특종이다. 이런 이유로 옥천신문은 재정의 절반이 구독자들의 구독료라고 한다. 대한민국에 이런 언론사는 옥천신문 하나일 것이라고 추측한다. 황민호 대표는 옥천신문의 구독 해제 사유가 대부분 ‘사망’이라며 이들은 죽을 때까지 옥천신문을 본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황민호 대표는 옥천신문의 콘텐츠가 혁신이라는 말을 붙이기는 어렵다고 했다. 원칙대로, 기준대로, 학교에서 배운대로 실천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많은 언론사가 원칙과 기준을 떠나 네이버에 검색이 되기 위해 혈안이며, 유투브 구독자와 뷰 수에만 목을 맨다고 비판했다. 황민호 대표는 “우리 지역에서 발행한 뉴스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질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네이버 뉴스 카테고리에 ‘옥천’을 검색하면 대부분 보도자료를 받아쓴 기사들만 나온다. 황민호 대표는 이것이 ‘뉴스’가 맞는가에 대해 의문을 가지며, 진정한 뉴스란 “주민과 독자를 만나 피와 땀 흘려 취재한 것”이라고 말했다. 작년에 발행을 시작한 면 단위 마을신물 <청산별곡(현 주간영동)>도 ‘진짜 뉴스’를 보도하는 신문이 없기 때문에 시작했다고 밝혔다. 특히 영동군에는 주재 기자는 있어도 취재 기자는 없다며 군청 앞에서 삭발 시위를 해도 보도되지 않는 현실을 지적했다.
정론지 충청리뷰의 도전
충청리뷰는 1994년 발행을 시작한 충북의 대표 정론지이다. '작지만 강한 신문'을 선언한 충청리뷰의 이재표 편집국장은 종합미디어 구축에 도전하고 전문기자클럽을 꾸리는 등 언론의 가치를 위해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이재표 국장은 자신의 원래 장래희망이 ‘시인’이었음을 밝히며 글로 먹고 살기 위해 기자가 됐다는 이야기로 강연을 시작했다.
방송사에서 마을 신문으로, 마을 신문에서 충청리뷰로 입사와 퇴사를 오가던 이재표 국장은 충청리뷰 입사 당시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신문은 기호 상품이고, 충청리뷰는 더 이상 팔리지 않는 상품이 되었기 때문이다. 팔리지 않는 상품을 언제까지 만들어야 하는가 고민하던 그는 다른 모델을 찾고 싶어 마을 신문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행성 B를 찾아내 결국은 충청리뷰와 함께 B로 이주하겠다는 큰 꿈을 갖고서. 결국 그는 충청리뷰로 돌아왔다. 하지만 “신문을 팔지 말고 가치를 팔자”라는 생각과 함께 돌아왔다고 말했다. 당시 이재표 국장은 충청리뷰 측에 주 2일 근무, 전 직원 동일 임금, 개간 또는 월간으로 전환한 출판업 부활을 제안했다고 말했다. 신문을 구독 형태가 아니라 서점에서도 팔고, ‘빅이슈(노숙자를 돕되 노동을 통해 도와주려는 공익적 목적을 모토로 하는 잡지)’처럼 청주 시내에서 일자리를 창출하는 방식이라고 설명을 덧붙였다. ‘전문기자클럽’도 이재표 국장이 고안한 새로운 시도였다. 글 잘 쓰는 왕년의 기자들을 충청리뷰로 불러모으자는 취지였다.
최근엔 모든 이들이 주목할 만한 새로운 시도를 준비하기도 했다. ‘검찰 특활비 보도’였다. 이재표 국장은 <충청리뷰, 뉴스타파와 함께 ‘검찰 금고’ 연다>라는 기사를 통해 뉴스타파와 함께 검찰 예산 공동 취재를 진행하고 있음을 알렸다. 하지만 이 문제와 관련해 회사 내부에서 사건이 있었고, 이로 인해 사표를 결심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지금은 본사의 기자들과 의기투합해 함께 투쟁하기로 했다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그는 다음날 충청리뷰에 실릴 자신의 칼럼 <할 말>을 낭독하며 강연을 마쳤다. 해당 칼럼에서는 검찰 예산 검증 보도에 대해 모든 사내 구성원이 동의에 이르지 못해 보도를 시작하지 못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후 포럼 다음날인 27일, 이재표 국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사측으로부터 보직해임 처분을 받았다고 알렸으며, 칼럼 <할 말>은 삭제된 채 신문이 발행됐다. 10월 4일, 충청리뷰는 이재표 국장에 대한 보직해임을 철회했다. 부디 이재표 국장을 비롯한 충청리뷰 취재기자들의 활동이 위축되지 않고 충청리뷰의 검찰 예산 검증 보도가 무사히 진행되길 바란다.
건강한 지역언론, 어떻게 만들까
긴 포럼의 대장정은 충북민주언론시민연합 계희수 활동가가 마무리를 지었다.
계희수 활동가는 저널리즘을 공부하며 큰 꿈을 안고 기자가 됐지만, 현실은 척박했음을 지적했다. 중요한 지역 이슈에 대해 열심히 뉴스를 만들어도 사람들인 네이버를 장식하는 서울권의 사소한 이야기에 더 주목한다는 것이다. 계희수 활동가는 이를 통해 전국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언론의 수혜를 공평하게 받지 않음을 느꼈다고 말했다. 특히 지역 주재 기자를 두지 않는 언론사들이 태반이며, 서울 수도권의 뉴스로 지면을 채우면서도 ‘중앙언론’, ‘전국권 언론’이라고 칭하는 언론사들을 비판했다. 이에 계희수 활동가는 뉴스 구독을 고민할 때 “내가 사는 곳의 뉴스를 이 언론사는 얼마나 다루고 있는가”를 중점적으로 봤으면 한다고 밝혔다.
2021년, 청주시 북이면의 한 마을에서는 인근 소각장에서 발생한 유해물질로 집단 암이 발병하는 등의 문제가 있었다. 이에 대해 지역에서 많은 투쟁이 있었고, 많은 언론이 기사화했지만 환경부에 닿지는 않았다. 지역의 뉴스가 중앙부처까지 도달하기 어렵다는 것을 방증하는 사례였다. 전국권 뉴스인 한국일보를 보면 “소각시설과 인체 카드뮴 농도 간 인과성이 있다고 보기엔 어렵다”, “소각시설과 관련성이 높다고 알려진 혈액암이나 폐암 등은 큰 영향을 받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환경부의 발표를 그대로 써놓았다. 주민들과 함께 투쟁하던 관련 단체들은 환경부의 발표를 인정하지 않았음에도 이들의 이야기는 실리지 않았다. 본사 KBS 뉴스9도 킥보드 단속 첫날임을 알리는 기사는 나갔지만, 북이면 소각장 이슈는 보도되지 않았다. 하지만 KBS청주의 기사는 달랐다. 환경부의 발표에 대해 주민들이 이에 항의하고, 퇴장당하는 장면까지 담긴 소식이 상세히 보도됐다. 계희수 활동가는 이것이 실제로 취재를 오는 언론과 그렇지 않은 언론의 핵심적인 차이라고 말했다.
계희수 활동가는 왜 우리의 이야기가 전국뉴스에는 나오지 않는지 의구심을 보여야 하며, 지역언론을 사회 인프라로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네이버나 유튜브가 사실상 뉴스를 데스킹하고 있는 현실에서, 전국적으로 화제가 되고 조회수가 많이 나오는 것들만 전달되는 구조 속에서 지역언론이 생산하는 콘텐츠를 얼마나 잘 받아들이고 선별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이에 우리부터 지역언론도 사회 인프라라는 인식을 하고 모든 주체들이 다양한 차원의 방법을 고민해 건강한 공론장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계희수 활동가는 ‘뉴스 사막화’ 개념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했다. 언론사들이 사라지며 뉴스가 고갈되는 지역이 생긴다는 말이다. 그는 이것을 재난에 준하는 위기 상황으로 보고, 적극적으로 지역언론의 존립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충북민언련 20주년 기념 좋은 콘텐츠 포럼 <지역언론의 새 판을 만들다>를 통해 좋은 뉴스와 프로그램을 만났고, 메마른 지역에서도 단비가 되어주는 언론인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런 긍정적인 재생산이 반복된다면 지역민들도 지역언론에서 희망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충북민언련은 ‘단비 언론인’들과의 연대를 통해 건강한 지역언론을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