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의 연쇄테러로 나라 밖이 불안하다. 국가가 국민을 향해 총을 겨눌 수도 있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있는 나라 안이 불안하다. 나라안팎의 현실이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암흑 속과 같은 느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제를 살았고 오늘을 살고 있고 내일도 살아야한다. 산다는 것이 너저분하게 널려있는 수많은 근심과 불안과 동행하면서 그 안에 있는 근심을 잠재우고 시시때때로 밀려드는 불안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나의 여가를 만들어 숨구멍을 찾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타고난 재능이 없는 사람이다. 악착같은 의지를 가진 사람도 아니다. 그저 지극히 평범하고 너무나 일상적인 사람이다. 그렇지만 재능이 없다고 해서, 악착같음이 부족하다고 해서, 평범하고 일상적이라고 해서 꿈을 잊고 사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처럼 평범하게 일상적인 삶을 살고 있고 내가 소망하고 지향하는 삶을 꿈꾸며 산다. 소소하지만 좋아하는 일을 시작할 줄 알고 힘든 과정을 견뎌낼 수 있을 만큼 즐겁게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나선다. 비록 과정이 고통스럽고 두려울 수 있어도 결코 멈추진 않는다.
나는 책읽기를 좋아한다. 문학을 통해 타자를 만나고 역사를 통해 다른 세상을 접하고 철학을 통해 또 다른 나를 바라본다. 책읽기에 달인은 아니지만 그것이 몸에 새겨지도록 하루하루 덧개를 씌우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 혼자하다 보니 게으른 자신과 타협할 때도 있고 시시때때로 포기하려는 또 다른 내 마음이 스물스물 올라오기도 한다. 그럴 때 혼자가 아니라 격려하고 힘이 되는 동료가 있었으면 하고 시행착오를 덜하도록 길을 이끄는 스승이 있었으면 하고 내가 꿈꾸는 삶에 이를 때까지 지치지 않는 굳건한 자아가 있었으면 한다.
바람이 있다. 책을 사이에 두고 작지만 손길이 닿을 수 있는 공간에서 마음길이 오갈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는 따뜻한 틀이 있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소망이 있다. 하지만 소망과 무관하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을 찾는 것은 싶지 않아 보인다. 그런데 이 기사를 읽고 나니 어쩌면 어렴풋하게 방법 하나를 찾은 것 같다. ‘동네’라는 소박한 공간과 그곳을 따뜻하게 채워나가는 이웃들과 그들이 갖고 있는 무한한 것들을 공유하는 것. 부족하지만 결과물을 나누며 더불어 사는 삶이야말로 행복의 첫걸음이 아닐까. 내가 서 있는 이곳에서 그런 삶을 꿈꿔본다.
나를 소개하는 수식어로 ‘동네가수’라고 이름 붙이는 재미를 계속 느끼다 보니 ‘동네’라는 단어에 푹 빠지게 되었다. 곁에 있는 사람들과 장소의 이름 앞에 ‘동네’를 붙여 부르기 시작한 거다. 자주 가서 차도 마시고 공연도 하는 ‘동네 카페’, 걸어서 30분쯤 되는 오래된 인쇄골목에 자리잡은 ‘동네 서점’, 작은 인연으로 시작해 공연 포스터나 인쇄물 디자인을 해주는 ‘동네 디자이너’, 누구나 그 자신의 이야기로 작은 책을 만들 수 있게 해주는 ‘동네 출판사’…. 그리고 주변에서 일어나는 행사나 사건에 대해 SNS와 블로그에 꾸준히 리뷰를 올려주는 친구를 ‘동네 1인미디어’라고 부르면 색다른 재미와 의미가 생기는 것 같다.
올해 5월부터는 전국을 돌아다니던 것을 잠시 멈추고 부산에 주로 머물렀다. 특히 원도심이라고 불리는 부산의 중구, 서구에서 주로 지내다 보니 목적 없이 마주치던 장소와 사람들과 (심지어 길고양이와 동네 강아지까지!) 반복적인 인연이 생기기 시작했다. 동선이 생기니 동네가 생기고 그 안에서 편안해지는 장소와 사람들의 지도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이다. 반복이 지겨움만을 만들어내는 건 아니라는 조금 늦은 깨달음이라고 할까.
<주간 불현듯> 인쇄를 위해 매주 인쇄골목에 가게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길 모퉁이에 아주 작은 서점이 들어섰다. 이 사실은 인쇄소 사장님의 목소리로 먼저 전해 들었다. “저기 젊은 친구가 뭔가를 시작했는데 아, 나는 도저히 그 수익 구조를 알 수가 없네. 어제도 오늘도 내가 커피는 두 잔씩 팔아줬는데… 허허허.” 이미 주변의 젊은 친구들이 하는 돈 안 되는 일들에 대해 늘 최저가격을 보장해주시는 사장님의 마음이 느껴져서 나도 따라 웃었다.
그곳에 가 보았더니 두 평 남짓한 가게 앞에 <업스테어>라는 간판이 조용하게 놓여 있었다. 주인장에게 울림을 준 책들을 골라 모아둔 책장과 누군가에게 더이상 필요하지 않은 책들을 대신 판매해주는 책장이 가지런하게 있었다. 아직 여백이 많아서, 처음 만난 주인장의 느낌처럼 정갈한 모습이었다. 책방지기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편안하게 주고받다 보니, 오래된 부산의 한 골목에서 그녀의 작은 꿈들이 새어 나오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되었다. 그 촉은 틀리지 않았다.
지난 몇 달간 <업스테어>에서는 나른한 일요일 오후 책과 음악이 함께하는 공연들, 금요일 밤의 영화 상영회, ‘동네 번역가’ 선생님의 강연, ‘동네 출판사’ 친구들의 자그마한 행사가 열리는 장소로 시끄럽지 않지만 부지런히 재미난 일들이 일어났다. 열 명 남짓 앉으면 꽉 차 버리는 그 곳에 계속해서 사람들의 발자국과 온기가 오고 가고 있다.
동네 출판사 <스몰바치북스>의 ‘책 만들기’ 프로젝트
자타공인 동네가수로서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칠 수 없듯, 나에게 <업스테어>에서의 공연은 당연한 결과! 그리하여 이 ‘동네 서점’에서 열린 나의 공연은 ‘동네’ 시리즈의 절정판이 되었다. 의도치 않게 몇 달 전에 정해둔 공연 날짜가 다른 한편에서 진행 중이던 작당과 시기가 맞아 떨어지게 된 것이다. 우연히 어느 날 ‘동네 출판사’ <스몰바치북스>의 디자이너와 대화를 나누던 중에, 그녀가 누구든 자신의 이야기로 책을 만들어주는 수업을 운영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짧은 소설 몇 편을 써둔 게 있어서 그것을 모아 책으로 엮어보고 싶다고 했다. 내 말을 그냥 흘려 듣지 않았던 그녀는 다음 수업에 나를 초대했다. 바로 그 책의 출간 시기가 마침 <업스테어> 공연 날짜와 맞아 떨어져서 자연스레 출판기념 공연(같은 것)이 되었다.
<업스테어>에서 일요일 오후에 열리는 작은 공연에는 조금 특별한 점이 있다. 그것은 음악가가 자신의 노래만 부르는 것이 아니라, 들려주고 싶은 노래를 준비해 와서 공연하기도 하고, 좋아하는 책을 가져와 그 구절을 나누기도 한다는 것이다.
공연을 준비하며 어떤 음악을 함께 감상할까 꽤 오랜 시간 고민을 했다. 그러다 떠오른 것은 몇 년 전 세상을 떠난 한 친구의 음악이었다. 몇몇 친한 친구들의 하드디스크 속에만 있는 그의 음악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니 두근거렸다. 매우 가까이에 마주 앉은 열 명 남짓한 그 날의 ‘동네 관객’들은 처음 들어보는 내 친구의 음악에 따뜻하게 귀 기울여 주었다. 그리고 그 순간의 슬픔과 기쁨 속에 함께 있어주었다.
이어서 짧은 소설 일곱 편이 실린 나의 책 <작은 집>이 만들어진 이야기를 함께 나누는데, 사실은 부끄러웠다. 하지만 완벽한 모습이 아니더라도, 할 수 있는 만큼의 작은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가까이 있는 사람들과 나누면서 나는 천천히 단단해진다는 것을 계속 경험하고 있다.
‘동네 출판사’ <스몰바치북스>의 책 만들기 수업 선생님(이자 친구)은 결과물을 만들고 난 다음 찾아오는 부끄러움과 공허함 역시도 이미 수업에 포함되어 있었다는 놀라운 이야기를 그날의 공연에서 들려주었다. 한 명 한 명의 얼굴을 천천히 다 마주볼 수 있는 작은 공연을, 아무리 수익 구조가 되지 못한다고 해도 계속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분명히 있는 것이다.
요즘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며 합주를 연습하고 있는 ‘동네 기타리스트’도 이번 공연에 세션으로 참여해 주었다. (내년에는 ‘동네 밴드’를 만들어 보려고 한다!) ‘동네 1인미디어’ 친구는 역시 이 자리를 페이스북과 블로그를 통해 기록해 주었으니, 입이 마르도록 외치게 되는 ‘동네’의 힘이란!
나에게는 늘 막연하게 꿈꾸던 그림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특별히 뛰어난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평범한 이웃들이 자신이 가진 것들로 작은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바로 곁의 사람들과 나누며 응원하며 함께 살아가는 모습이다. 서로의 빈틈과 부족함을 자연스레 채우며 함께 만족하는 그런 삶의 이미지 말이다. 그런데 ‘동네’라는 말 속에 그 꿈의 그림이 스며들어 있는 것 같다. 매우 천천히.
[엄마의 선택]동네서점 업스테어 이야기
프랑스 파리의 연쇄테러로 나라 밖이 불안하다. 국가가 국민을 향해 총을 겨눌 수도 있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있는 나라 안이 불안하다. 나라안팎의 현실이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암흑 속과 같은 느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제를 살았고 오늘을 살고 있고 내일도 살아야한다. 산다는 것이 너저분하게 널려있는 수많은 근심과 불안과 동행하면서 그 안에 있는 근심을 잠재우고 시시때때로 밀려드는 불안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나의 여가를 만들어 숨구멍을 찾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타고난 재능이 없는 사람이다. 악착같은 의지를 가진 사람도 아니다. 그저 지극히 평범하고 너무나 일상적인 사람이다. 그렇지만 재능이 없다고 해서, 악착같음이 부족하다고 해서, 평범하고 일상적이라고 해서 꿈을 잊고 사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처럼 평범하게 일상적인 삶을 살고 있고 내가 소망하고 지향하는 삶을 꿈꾸며 산다. 소소하지만 좋아하는 일을 시작할 줄 알고 힘든 과정을 견뎌낼 수 있을 만큼 즐겁게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나선다. 비록 과정이 고통스럽고 두려울 수 있어도 결코 멈추진 않는다.
나는 책읽기를 좋아한다. 문학을 통해 타자를 만나고 역사를 통해 다른 세상을 접하고 철학을 통해 또 다른 나를 바라본다. 책읽기에 달인은 아니지만 그것이 몸에 새겨지도록 하루하루 덧개를 씌우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 혼자하다 보니 게으른 자신과 타협할 때도 있고 시시때때로 포기하려는 또 다른 내 마음이 스물스물 올라오기도 한다. 그럴 때 혼자가 아니라 격려하고 힘이 되는 동료가 있었으면 하고 시행착오를 덜하도록 길을 이끄는 스승이 있었으면 하고 내가 꿈꾸는 삶에 이를 때까지 지치지 않는 굳건한 자아가 있었으면 한다.
바람이 있다. 책을 사이에 두고 작지만 손길이 닿을 수 있는 공간에서 마음길이 오갈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는 따뜻한 틀이 있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소망이 있다. 하지만 소망과 무관하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을 찾는 것은 싶지 않아 보인다. 그런데 이 기사를 읽고 나니 어쩌면 어렴풋하게 방법 하나를 찾은 것 같다. ‘동네’라는 소박한 공간과 그곳을 따뜻하게 채워나가는 이웃들과 그들이 갖고 있는 무한한 것들을 공유하는 것. 부족하지만 결과물을 나누며 더불어 사는 삶이야말로 행복의 첫걸음이 아닐까. 내가 서 있는 이곳에서 그런 삶을 꿈꿔본다.
<일다>장소와 사람들 앞에 ‘동네’를 붙여보자
(기사바로가기http://www.ildaro.com/sub_read.html?uid=7292§ion=sc7§ion2=음악)
우리 동네에 들어선 작은 서점 <업스테어>
나를 소개하는 수식어로 ‘동네가수’라고 이름 붙이는 재미를 계속 느끼다 보니 ‘동네’라는 단어에 푹 빠지게 되었다. 곁에 있는 사람들과 장소의 이름 앞에 ‘동네’를 붙여 부르기 시작한 거다. 자주 가서 차도 마시고 공연도 하는 ‘동네 카페’, 걸어서 30분쯤 되는 오래된 인쇄골목에 자리잡은 ‘동네 서점’, 작은 인연으로 시작해 공연 포스터나 인쇄물 디자인을 해주는 ‘동네 디자이너’, 누구나 그 자신의 이야기로 작은 책을 만들 수 있게 해주는 ‘동네 출판사’…. 그리고 주변에서 일어나는 행사나 사건에 대해 SNS와 블로그에 꾸준히 리뷰를 올려주는 친구를 ‘동네 1인미디어’라고 부르면 색다른 재미와 의미가 생기는 것 같다.
올해 5월부터는 전국을 돌아다니던 것을 잠시 멈추고 부산에 주로 머물렀다. 특히 원도심이라고 불리는 부산의 중구, 서구에서 주로 지내다 보니 목적 없이 마주치던 장소와 사람들과 (심지어 길고양이와 동네 강아지까지!) 반복적인 인연이 생기기 시작했다. 동선이 생기니 동네가 생기고 그 안에서 편안해지는 장소와 사람들의 지도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이다. 반복이 지겨움만을 만들어내는 건 아니라는 조금 늦은 깨달음이라고 할까.
<주간 불현듯> 인쇄를 위해 매주 인쇄골목에 가게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길 모퉁이에 아주 작은 서점이 들어섰다. 이 사실은 인쇄소 사장님의 목소리로 먼저 전해 들었다. “저기 젊은 친구가 뭔가를 시작했는데 아, 나는 도저히 그 수익 구조를 알 수가 없네. 어제도 오늘도 내가 커피는 두 잔씩 팔아줬는데… 허허허.” 이미 주변의 젊은 친구들이 하는 돈 안 되는 일들에 대해 늘 최저가격을 보장해주시는 사장님의 마음이 느껴져서 나도 따라 웃었다.
그곳에 가 보았더니 두 평 남짓한 가게 앞에 <업스테어>라는 간판이 조용하게 놓여 있었다. 주인장에게 울림을 준 책들을 골라 모아둔 책장과 누군가에게 더이상 필요하지 않은 책들을 대신 판매해주는 책장이 가지런하게 있었다. 아직 여백이 많아서, 처음 만난 주인장의 느낌처럼 정갈한 모습이었다. 책방지기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편안하게 주고받다 보니, 오래된 부산의 한 골목에서 그녀의 작은 꿈들이 새어 나오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되었다. 그 촉은 틀리지 않았다.
지난 몇 달간 <업스테어>에서는 나른한 일요일 오후 책과 음악이 함께하는 공연들, 금요일 밤의 영화 상영회, ‘동네 번역가’ 선생님의 강연, ‘동네 출판사’ 친구들의 자그마한 행사가 열리는 장소로 시끄럽지 않지만 부지런히 재미난 일들이 일어났다. 열 명 남짓 앉으면 꽉 차 버리는 그 곳에 계속해서 사람들의 발자국과 온기가 오고 가고 있다.
동네 출판사 <스몰바치북스>의 ‘책 만들기’ 프로젝트
자타공인 동네가수로서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칠 수 없듯, 나에게 <업스테어>에서의 공연은 당연한 결과! 그리하여 이 ‘동네 서점’에서 열린 나의 공연은 ‘동네’ 시리즈의 절정판이 되었다. 의도치 않게 몇 달 전에 정해둔 공연 날짜가 다른 한편에서 진행 중이던 작당과 시기가 맞아 떨어지게 된 것이다. 우연히 어느 날 ‘동네 출판사’ <스몰바치북스>의 디자이너와 대화를 나누던 중에, 그녀가 누구든 자신의 이야기로 책을 만들어주는 수업을 운영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짧은 소설 몇 편을 써둔 게 있어서 그것을 모아 책으로 엮어보고 싶다고 했다. 내 말을 그냥 흘려 듣지 않았던 그녀는 다음 수업에 나를 초대했다. 바로 그 책의 출간 시기가 마침 <업스테어> 공연 날짜와 맞아 떨어져서 자연스레 출판기념 공연(같은 것)이 되었다.
<업스테어>에서 일요일 오후에 열리는 작은 공연에는 조금 특별한 점이 있다. 그것은 음악가가 자신의 노래만 부르는 것이 아니라, 들려주고 싶은 노래를 준비해 와서 공연하기도 하고, 좋아하는 책을 가져와 그 구절을 나누기도 한다는 것이다.
공연을 준비하며 어떤 음악을 함께 감상할까 꽤 오랜 시간 고민을 했다. 그러다 떠오른 것은 몇 년 전 세상을 떠난 한 친구의 음악이었다. 몇몇 친한 친구들의 하드디스크 속에만 있는 그의 음악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니 두근거렸다. 매우 가까이에 마주 앉은 열 명 남짓한 그 날의 ‘동네 관객’들은 처음 들어보는 내 친구의 음악에 따뜻하게 귀 기울여 주었다. 그리고 그 순간의 슬픔과 기쁨 속에 함께 있어주었다.
이어서 짧은 소설 일곱 편이 실린 나의 책 <작은 집>이 만들어진 이야기를 함께 나누는데, 사실은 부끄러웠다. 하지만 완벽한 모습이 아니더라도, 할 수 있는 만큼의 작은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가까이 있는 사람들과 나누면서 나는 천천히 단단해진다는 것을 계속 경험하고 있다.
‘동네 출판사’ <스몰바치북스>의 책 만들기 수업 선생님(이자 친구)은 결과물을 만들고 난 다음 찾아오는 부끄러움과 공허함 역시도 이미 수업에 포함되어 있었다는 놀라운 이야기를 그날의 공연에서 들려주었다. 한 명 한 명의 얼굴을 천천히 다 마주볼 수 있는 작은 공연을, 아무리 수익 구조가 되지 못한다고 해도 계속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분명히 있는 것이다.
요즘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며 합주를 연습하고 있는 ‘동네 기타리스트’도 이번 공연에 세션으로 참여해 주었다. (내년에는 ‘동네 밴드’를 만들어 보려고 한다!) ‘동네 1인미디어’ 친구는 역시 이 자리를 페이스북과 블로그를 통해 기록해 주었으니, 입이 마르도록 외치게 되는 ‘동네’의 힘이란!
나에게는 늘 막연하게 꿈꾸던 그림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특별히 뛰어난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평범한 이웃들이 자신이 가진 것들로 작은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바로 곁의 사람들과 나누며 응원하며 함께 살아가는 모습이다. 서로의 빈틈과 부족함을 자연스레 채우며 함께 만족하는 그런 삶의 이미지 말이다. 그런데 ‘동네’라는 말 속에 그 꿈의 그림이 스며들어 있는 것 같다. 매우 천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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