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도 배고픈가

심웅섭
2014-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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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사건은 당사자와 유가족은 물론이고 온 국민에게 엄청난 충격과 고통을 안겨주었다.
최초의 놀라움과 안타까움은 사고 발생 한 달이 가까워지면서 점차 분노를 넘어 한국사회 자체에 대한 체념으로까지 변화하고 있는 모양새이다. 나 역시 그중의 한사람이다. 도대체 선진국이라고 믿고 있던 대한민국에서 어떻게 이런 후진적인 사고가 발생할 수 있을까? 그리고 도대체 재난구조 시스템은 왜 이리도 엉성하고 정치권은 무책임할 수 있을까? 그래서 나의 분노는 선장과 선원으로, 해운회사로, 해경으로, 구원파로, 정치권으로, 혹은 언론사로 옮겨 다니고 있다.

그런데 정작 그런 나는 세월호 사건의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을까? 만일 세월호가 낡은 배를 안전한 새 여객선으로 바꾸고 모든 안전 장비들을 제대로 갖추려면, 선장이나 선원들도 제대로 된 임금을 받고 안정된 신분을 유지할 수 있으려면, 해운회사도 안전규정들을 지키면서 적정한 기업 이윤을 얻을 수 있으려면 운임이 얼마나 오를까? 물론 온갖 부정부패와 검은 고리라는 변수가 있긴 하지만 그런 누수들을 죄 없애버리더라도 요금은 상당히 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쩌면 50%나 혹은 갑절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인터넷을 뒤지고 덤핑 상품을 뒤져서 제주도를 다녀오곤 하는 나는 어쩜 사고의 책임당사자는 아닐지라도 배후세력, 혹은 방조자정도는 될 것이 아닌가.

▲ 출처:연합뉴스

선박의 안전만 문제일까. 자동차든 비행기든 기차든, 모든 교통수단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둔다면 내가 부담해야할 돈들은 지금보다 훨씬 많아질 것이다. 거기에 환경과 문화와 교육과 복지와, 더 나아가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많은 것들에 대해 지금보다 훨씬 더 철저하다면 도대체 내가 더 내야할 돈이 얼마가 될지 가늠조차하기 어렵다.

우리나라는 70년대 이후 대기업, 수출, 도시화, 새마을운동의 구호아래 그야말로 눈부신 경제성장을 했다. 오늘날의 네팔과 비슷한 모습의 농경사회였던 한국은 세계 10위권을 오르내릴 정도로 부자나라가 됐다. 그런데 정작 우리의 의식은 아직도 배고프다. 엄밀한 의미에서 두려움에 가깝지만 좀 더 벌어서 좀 더 먹고 싶고 좀 더 사고 싶은 욕망이 우리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다는 말이다. 안전이니 문화니 환경이니 복지니 하는 것들은 아직 이르다는 핑계로 미뤄두고 말이다.

나는 세월호 사건이 한국사회의 후진성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라는데 전적으로 공감한다. 거꾸로 말하면 세월호를 계기로 연관된 모든 문제점들을 들추어내고 이를 고치려고 노력한다면 한국사회는 한 차원 업그레이드 될 것 이라고 믿는다. 그런 의미에서 관련된 모든 문제점들을 끝까지 파헤치고 관련자들을 엄벌하여 교훈을 남기는 일, 그리고 법과 제도를 정비하여 다시는 비슷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일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정도를 유족과 전 국민이 느끼고 있는 아픔의 대가로 받아들이는 것에는 반대한다.

한국사회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자기 성찰이 요구된다는 말이다. 이 모든 것이 한국사회의 후진적인 천민자본주의, 물신주의에서 비롯된 것임을 가감 없이 인정하는 일, 그리고 과연 세월호 사고의 책임에서 나는 정말로 자유로운가 하는 질문이 바로 그것일 것이다. 그리하여 세금은 한 푼이라도 아끼고 싶고, 싸고 좋은 물건들을 한 개라도 더 사고 싶고, 실컷 먹고 흥청망청 놀러 다니고 싶은 나에게 스스로 질문을 던진다. 나는 아직도 배고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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