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오늘> 서울만 대한민국이 아니다 김주완 경남도민일보이사·출판미디어국장 서울 사람들에게 참으로 묘한 말버릇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서울 이외의 지역은 모두 ‘지방’이라 통칭하는 버릇이다. 부산에 출장을 가면서 ‘지방 출장 간다’ 하고, 창원에 와서 현지 사람과 함께 술을 마시던 중 전화가 걸려오면 ‘응, 지금 지방에 와 있어’라고 대답한다. 서울도 수많은 지역 중 하나일 뿐인데, 그들에겐 대한민국이 ‘서울+지방’으로만 보이는 걸까. 아니 서울이 곧 대한민국이고, 그 외에는 그냥 이름 없는 ‘부속 도서’ 쯤으로 여기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정말 서운하다. 민중의 힘으로 대한민국 역사를 바꾼 사건은 모두 서울 이외의 지역에서 시작됐다. 1948년 제주 4·3항쟁부터 1960년 이승만 독재에 맞서 일어선 2·28 대구항쟁이 그랬고, 부정선거에 항거한 3·15 마산의거가 전국에 확산됨으로써 4·19혁명과 이승만 하야로 이어진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박정희 정권의 종말을 부른 부마민주항쟁도 그러했고, 80년 광주의 통한을 바탕으로 전두환 군사독재를 종식하고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한 6월민주항쟁도 전국 각 지역의 열정적인 투쟁이 없었다면 2008년 광화문 촛불시위처럼 사그라지고 말았을 것이다. 특히 87년 6월항쟁의 역사는 그동안 서울 중심 시각에서 기록된 게 많으므로 약간 설명이 필요하다. 서울과 전국 주요도시에서 6월 10일 대규모 시위가 벌어진 후 나흘간 계속되던 명동성당 농성이 14일 밤 해산되면서 15일부터 서울의 시위는 소강상태에 들어갔다. 이때 경남 진주에서 전국은 물론 세계를 놀라게 한 사건이 발생한다. 6·10대회는 마산을 경남의 거점으로 삼아 연합시위로 치렀지만, 이후 진주에서 독자적인 시위를 벌이던 시민과 대학생들이 15일 1만여 명에 이르는 대규모 시위를 벌여 시내 거리를 완전 장악해버렸다. 마산에 집결해 있던 경찰은 허를 찔린 격이 됐다. 급히 3개 중대를 진주로 급파했으나 진압은 역부족이었다. 그날 마산에서도 격렬한 시위가 있었음은 물론이다. 15일 진주 시위에 놀란 경찰은 16일 8개 중대를 증원해 무차별 폭력 진압에 나섰다. 이에 분노한 시민과 학생들은 파출소를 습격해 불태우는 등 민중항쟁의 양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17일 기어이 일이 터졌다. 시위대가 경전선 철도와 남해고속도로를 점거하고 LPG 운반트럭 2대를 탈취해 경찰과 대치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런 지역도시의 투쟁은 18일자 전국 주요언론은 물론이고 워싱턴포스트와 타임 등 외신에도 대서특필된다. WP는 ‘S. Korea Protests Grow In Provincial Cities’(지방도시 시위 증폭)라는 제목을 뽑았고, 조선일보 1면 머리는 ‘남해고속도 3시간 장악’, 사회면 머리는 ‘지방시위 갈수록 격렬’이었다. 또 타임은 인포그래픽으로 시위 발생 지역을 표시했는데, 진주·마산·부산·울산·포항·대구·목포·광주·전주·군산·대전·청주·수원·원주·춘천·인천·서울에 선명한 폭발 이미지를 그려 넣었다. 이런 지역의 투쟁으로 6월항쟁은 다시 고양되었고 6·26대행진으로 최고조에 이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신영복 선생도 ‘변화와 창조는 중심부가 아닌 변방에서 이루어진다’고 하지 않았던가. 굳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 까닭은 요즘 집회와 시위는 모두 서울, 그 중에서도 광화문으로만 집중되고 있어서다. 그럴 때면 경찰도 모두 서울로 가버려 그 외 지역은 치안공백 상태가 된다. 2008년 촛불시위 이후 서울 집중 현상은 더 두드러졌다. 예전에도 ‘상경투쟁’은 있었지만 요즘만큼은 아니었다. 교통이 좋아져서일까. 시위에도 서울 빨대효과가 작용해서일까.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다. 하지만 혹시라도 이를 기획하고 주최하는 사람들이 보기에 서울이 곧 대한민국이고, 서울에서 대규모 시위만 벌이면 대한민국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 (기사바로가기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6366) |
[이재표의 보이는 마을]서울만 대한민국이 아니다
때가 때이니만큼 “잘 지내냐?”며 안부를 묻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렇다”고 대답해 주고 싶지만 선뜻 그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힘들다”는 말을 내뱉기는 싫어서 “사는 게 전쟁이지 뭐”라고 대답합니다. 사는 게 전쟁입니다. “잘 지내냐”고 묻는 친구도 썩 잘 지내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너도 나도 끼니가 걱정이던 시절에 “식사는 하셨어요, 진지 드셨어요?”라고 묻던 우리입니다. 삼포, 오포세대가 되어버린 아들뻘 되는 청년들에게 “밥은 먹고 다니니?”라고 묻고 싶은 나이가 됐습니다. 진심으로 묻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청주마실이라는 ‘언론벤처’를 시작한지 3년이 가까워 옵니다. 여러 개의 마을신문을 네트워크하려던 계획은 표류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심난한 세상에, 삶이 곧 ‘어드벤처’입니다. 이야기를 만들고 전파하는 쪽으로 슬쩍 돌아섰습니다. 시쳇말로 스토리텔링입니다. 동네 토박이들, 쇠락해가는 구도심, 시민운동을 하는 사람들, 유기농업, 사회적기업, 전통문화, 자연경관…. 이런 것들이 청주마실이 노리는 ‘꺼리’들입니다. “도대체 왜 또 거꾸로 가느냐?”고 염려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때 그 3년 전에도 염려했듯이.
이참에 “회사이름을 바꿔보면 어떻겠냐”는 분들도 있습니다. ‘청주’는 지역적인 한계가 있고, ‘마실’은 왠지 이미지가 약하답니다. 쓸데없는 오기는 심신을 더 불편하게 만들 뿐이지만 청주마실이라는 이름으로 초심을 잃지 않으려합니다. 청주만 ‘뜯어먹고 살아도’ 배 두드리며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꿉니다. 아니 청주라는 이름을 내걸고 타 시도에서도 팔리는 청주마실이 되고 싶습니다. ‘관습법상의 수도는 영원히 서울이어야 한다’는 엉터리 명제가 틀렸다는 것을 청주마실의 역사로 증명하고 싶습니다.
부끄럽지만 저의 졸고와, 존경하는 선배 언론인 김주완 경남일보 이사의 칼럼 한 편을 함께 소개합니다.
<청주마실> 세월은 바퀴처럼 굴러간다 (기사바로가기 http://www.cjmasil.com/news/articleView.html?idxno=1043)
<미디어오늘> 서울만 대한민국이 아니다
김주완 경남도민일보이사·출판미디어국장
서울 사람들에게 참으로 묘한 말버릇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서울 이외의 지역은 모두 ‘지방’이라 통칭하는 버릇이다. 부산에 출장을 가면서 ‘지방 출장 간다’ 하고, 창원에 와서 현지 사람과 함께 술을 마시던 중 전화가 걸려오면 ‘응, 지금 지방에 와 있어’라고 대답한다.
서울도 수많은 지역 중 하나일 뿐인데, 그들에겐 대한민국이 ‘서울+지방’으로만 보이는 걸까. 아니 서울이 곧 대한민국이고, 그 외에는 그냥 이름 없는 ‘부속 도서’ 쯤으로 여기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정말 서운하다.
민중의 힘으로 대한민국 역사를 바꾼 사건은 모두 서울 이외의 지역에서 시작됐다. 1948년 제주 4·3항쟁부터 1960년 이승만 독재에 맞서 일어선 2·28 대구항쟁이 그랬고, 부정선거에 항거한 3·15 마산의거가 전국에 확산됨으로써 4·19혁명과 이승만 하야로 이어진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박정희 정권의 종말을 부른 부마민주항쟁도 그러했고, 80년 광주의 통한을 바탕으로 전두환 군사독재를 종식하고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한 6월민주항쟁도 전국 각 지역의 열정적인 투쟁이 없었다면 2008년 광화문 촛불시위처럼 사그라지고 말았을 것이다.
특히 87년 6월항쟁의 역사는 그동안 서울 중심 시각에서 기록된 게 많으므로 약간 설명이 필요하다. 서울과 전국 주요도시에서 6월 10일 대규모 시위가 벌어진 후 나흘간 계속되던 명동성당 농성이 14일 밤 해산되면서 15일부터 서울의 시위는 소강상태에 들어갔다.
이때 경남 진주에서 전국은 물론 세계를 놀라게 한 사건이 발생한다. 6·10대회는 마산을 경남의 거점으로 삼아 연합시위로 치렀지만, 이후 진주에서 독자적인 시위를 벌이던 시민과 대학생들이 15일 1만여 명에 이르는 대규모 시위를 벌여 시내 거리를 완전 장악해버렸다. 마산에 집결해 있던 경찰은 허를 찔린 격이 됐다. 급히 3개 중대를 진주로 급파했으나 진압은 역부족이었다. 그날 마산에서도 격렬한 시위가 있었음은 물론이다.
15일 진주 시위에 놀란 경찰은 16일 8개 중대를 증원해 무차별 폭력 진압에 나섰다. 이에 분노한 시민과 학생들은 파출소를 습격해 불태우는 등 민중항쟁의 양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17일 기어이 일이 터졌다. 시위대가 경전선 철도와 남해고속도로를 점거하고 LPG 운반트럭 2대를 탈취해 경찰과 대치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런 지역도시의 투쟁은 18일자 전국 주요언론은 물론이고 워싱턴포스트와 타임 등 외신에도 대서특필된다. WP는 ‘S. Korea Protests Grow In Provincial Cities’(지방도시 시위 증폭)라는 제목을 뽑았고, 조선일보 1면 머리는 ‘남해고속도 3시간 장악’, 사회면 머리는 ‘지방시위 갈수록 격렬’이었다. 또 타임은 인포그래픽으로 시위 발생 지역을 표시했는데, 진주·마산·부산·울산·포항·대구·목포·광주·전주·군산·대전·청주·수원·원주·춘천·인천·서울에 선명한 폭발 이미지를 그려 넣었다. 이런 지역의 투쟁으로 6월항쟁은 다시 고양되었고 6·26대행진으로 최고조에 이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신영복 선생도 ‘변화와 창조는 중심부가 아닌 변방에서 이루어진다’고 하지 않았던가. 굳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 까닭은 요즘 집회와 시위는 모두 서울, 그 중에서도 광화문으로만 집중되고 있어서다. 그럴 때면 경찰도 모두 서울로 가버려 그 외 지역은 치안공백 상태가 된다. 2008년 촛불시위 이후 서울 집중 현상은 더 두드러졌다. 예전에도 ‘상경투쟁’은 있었지만 요즘만큼은 아니었다. 교통이 좋아져서일까. 시위에도 서울 빨대효과가 작용해서일까.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다.
하지만 혹시라도 이를 기획하고 주최하는 사람들이 보기에 서울이 곧 대한민국이고, 서울에서 대규모 시위만 벌이면 대한민국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
(기사바로가기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63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