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자식이 함께 구조조정될 수 있는 사회

주영민
2015-12-17
조회수 151

[주영민의 뉴스푸딩] 20대 명퇴와 기업활력제고법

놓치기 쉬운 뉴스를 푸딩을 떠먹듯 쉽게 풀어 쓰자고 시작한 ‘뉴스푸딩’이 어느덧 8회를 맞았습니다. 그동안 잊지않고 뉴스푸딩을 읽어 준 독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내년에도 글을 쓴다면 더욱 맛있고 쉬운 뉴스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너무 상투적인 말이지만 제 마음은 그렇습니다. 모쪼록 넉넉한 마음으로 받아주세요.

올해 마지막 뉴스푸딩 주제는 무엇으로 할까 고민이 많았습니다. 가능하면 희망적이고 가슴 따뜻하게 하는 소식을 전하고 싶었는데, 제 성향 때문일까요. 오히려 더 팍팍한 소식이 많네요.

올 한해 우리는 어떤 생각으로 살았는지 분석한 연구 결과가 나왔습니다. 최근 빅데이터 분석업체인 다음소프트가 올 한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사용된 단어를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즉 트위터와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상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들을 추렸다는 것이겠지요. 아무래도 SNS의 주된 사용층이 10∼40대이어서 요새 젊은이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보여주는 지표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결론적으로 올해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는 세월호, 메르스, 국정화였습니다. 이어서 국정원, IS, ‘혐’, 어린이집, 메갈리아, 수저, 헬조선 등이 뒤를 이었다고 합니다. 밝은 단어는 단 하나도 발견할 수 없네요. ‘좋아’라던가 ‘행복’, ‘기쁨’ 이런 류의 단어는 올 한해 많이 사용하지 않았나 봅니다.

혹시나 모르는 단어가 있지 않을까 해서 알려드리자면 ‘혐’이 있겠네요. 혐오의 줄임말입니다. 요새 애들은 무조건 줄이는 걸 좋아하니까요. 몇 년 전에는 그냥 단어의 앞 글자만 따오는 수준이었다면 요즘은 아예 단어에 의미를 투영시키더군요. 예를 들면 2∼3년 전만해도 ‘뻐카충(버스카드 충전)’이라는 말이 어르신들을 당황케 했다면 요즘은 ‘꿀’, ‘개’ 이런 단어들이 우리를 당황케 합니다. ‘정말 재밌다’는 ‘꿀잼’으로, ‘큰 이득을 봤다’는 ‘개이득’, ‘정말 싫다’는 ‘극혐’ 이런 식으로 말이죠. ‘혐’은 그런 의미에서 사용된 단어입니다.

‘메갈리아’는 올해 만들어진 웹사이트입니다. ‘여자 일베사이트’라는 악명을 떨치고 있습니다. 개설 초기에는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여성혐오에 대항함을 기조로 삼는 것으로 시작했지만 현재는 남성혐오 성향을 보이는 대표적 커뮤니티 사이트로 꼽힌다고 합니다.

‘수저’는 ‘태어날 때부터 금수저 물고 나왔다’는 말에서 유래된 단어입니다. 반대말로 ‘흙수저’가 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어렵게 살아야 하는 운명을 안고 태어났다’는 말로 ‘흙수저 물었다’고 사용합니다.

‘헬조선’은 우리나라를 지칭하는 의미의 단어지요. 지옥과 다름없는 대한민국을 빗댄 표현입니다.

얼마 전 트위터 아이디 ‘샤우트’(@187Centi)를 쓰는 사람이 자신의 트위터에 60개의 뉴스 방송 화면을 모아 ‘한국이 놀라운 60가지 이유’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화제를 모았습니다.

방송뉴스 화면을 모아 놓은 이 글은 <GDP 대비 복지비 비율, OECD 최하위>, <아이들 '삶의 질' 꼴찌> 등 한국의 열악한 삶의 질을 보여주는 통계를 모아놓았습니다.

해당 뉴스가 최근 3년 내에 등장한 것이라고 하니 달리 ‘헬조선’이 왜 나왔을까 알겠더군요.


<2015년 을미년 올해의 핫이슈 베스트3…'세월호·메르스·국정화'>
(http://www.mediapen.com/news/articleView.html?idxno=107800)


가볍게 썰을 풀었으니 오늘의 뉴스푸딩 떠먹어 볼까요. 요즘 취업이 매우 어렵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인데 더 놀라운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두산인프라코어라는 회사가 실적악화를 이유로 대형 구조조정을 감행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지난해 입사한 신입사원한테까지 명예퇴직을 권고했다는 소식입니다. 삼성물산 역시 대형 구조조정에 들어갔고 20대도 해고의 칼날을 피하지 못했다고 하네요.

취업해도 명예퇴직할 수 있는 세상이 마련되고 있는 것이지요. 대학 졸업하고 몇 년을 도서관에서 지내다 겨우 취직했더니 나가라고 하는 꼴이 되는 것입니다. 특히 두산인프라코어는 ‘사람이 미래다’라는 이미지광고를 해온터라 비난의 수위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누리꾼들은 ‘명퇴가 미래냐?’라며 분노하고 있습니다.


<23세 신입사원도 ‘명퇴’···두산인프라코어 ‘잔인한 12월’>
(http://bizn.khan.co.kr/khan_art_view.html?artid=201512151619421&code=920100&med=khan)

<삼성물산 구조조정 확대 20대 직원까지 사직 권고>
(http://economy.hankooki.com/lpage/industry/201512/e20151202180345142400.htm)


이제 명퇴, 구조조정은 더 이상 아버지 세대 만의 일이 아닌 게 될 듯 합니다. 50∼60대 아버지와 20∼30대 자녀가 함께 회사에서 쫓겨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이 열린 것이지요. 기업 문화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는 대기업에서 이런 상황을 만들었으니 이런 문화가 퍼지는 건 시간문제일 것입니다.

이 와중에 각하께서는 이들 대기업을 독려하는 한 마디 하시었습니다. 유체이탈 화법의 정점이시었습니다.

각하께서 최근 '공급과잉으로 전반적 침체에 빠진 업종을 사전에 구조조정을 안 하면 업종 전체적으로 큰 위기에 빠지게 되고, 대량실업으로 이어진다'는 말씀을 하시었습니다. 그러면서 기업활력제고법이 하루 빨리 국회를 통과해야 한다고 강조하시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사전 구조조정 없을 시 대량실업 초래'>
(http://www.focus.kr/view.php?key=2015121400123029520)


각하께서 대량실업을 걱정하시어 구조조정을 촉구하신 것이었습니다. 기업의 구조조정 명분을 직접 만들어 주시니 그 혜안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기업에는 활력을, 국민에게는 절망을 안겨주는 이 소식은 어쩌면 우리가 접한 올해 뉴스 중 ‘결정적 한방’이 될 수 있을 듯 합니다. IMF 사태 당시 겪었던 사회적 트라우마가 아직 우리 안에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요즘 20∼30대가 정치, 사회, 문화 보다는 ‘먹고 사는 것’에 더 큰 관심을 갖는 것도 IMF 당시 이뤄졌던 대량해고가 남겨준 유산이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지요.

문득 올해 보도됐던 뉴스들 중 왜 이 뉴스가 떠오릅니다. 각하께서는 평소 ‘철의 여인’ 마가렛 대처 전 영국 수상이 롤모델이라고 말씀하시었습니다.

<‘마가릿 대처’ 죽음에 샴페인 터트리는 영국인들이… 왜?>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8630)

2016년 ‘병신년(丙申年)’이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습니다. 내년 뉴스푸딩도 ‘병신력’이 더욱 끌어 올려 즐거움 주는 뉴스 전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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