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민족 콩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조상의 빛난 콩을 오늘에 되살려 안으로 새로운 음식문화를 확립하고 밖으로 종자주권 수호에 이바지할 때다. 이에 우리의 나아갈 바를 밝혀 장사의 지표로 삼는다. (중략)
토종콩 수호와 민족정신에 투철한 애국애콩이 우리의 삶의 길이며,
나도 돈 벌고 손님들도 즐거운 행복세상을 실현하는 기반이다. 길이 후손에 물려줄 영광된 콩의 앞날을 내다보며,
신념과 긍지를 지닌 근면한 식당 주인으로서,
가족의 슬기를 모아 줄기찬 노력으로 새 역사를 창조하자.
형이 선비잡이 콩 요리점을 연다기에 장난삼아 선비잡이 콩 헌장을 써 봤다. 써 놓고 읽어보니 너무 재미있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삶의 의미를 대통령이 너무나도 간단하게 정의하고 국민을 교육하겠다는 독재적 발상과, 그걸 온 국민이 와글와글 외워야했던 웃지 못할 시대의 상징물을 가볍게 뒤집어 식당에 내 거는 격이니 그 반전과 조롱이 재미있는 것이다.
국민교육헌장.
1968년 12월에 선포됐고 이듬해인 69년, 당시 국민학교 3학년이던 나는 학교에서 그걸 기를 쓰고 외워야했다. 도대체 민족중흥이니 인류공영이니 하는 어려운 한자말이 무슨 뜻인지는 감히 생각할 수도 없었고 누구도 그 의미를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걸 다 외워야 집에 보내준다니까 온 교실이 떠나갈 듯 와글와글 외워서 선생님에게 검사를 받고서야 집에 왔던 기억만 남아있을 뿐이다. 얼마나 열심히 외웠으면 4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어쩌구 하는 구절이 머릿속에 또렷이 남아있을까?
그런데 우리는, 아니 나는 도대체 왜 태어난 것일까?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이 아니라면 무어란 말인가? 돈 벌기 위해서, 아빠와 남편노릇 잘하기 위해서, 혹은 행복하기 위해서 태어난 것일까? 그 답이야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어쨌든 독재자의 국민교육헌장이 오늘날 내 삶의 목적과 의미를 되새겨보는 단초가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의미가 있지 않나하는 엉뚱한 생각마저 든다.
하여 선포자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며 선포 47년이 지난 오늘, 나는 나만의 국민교육헌장, 아니 내 삶의 헌장을 선포해 볼까한다.
나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 따위를 띠고 이 땅에 태어나지 않았다. 민족통일이니 민중해방이니 하는 엄청난 명제를 위해 태어나지도 않았다. 회사나 지역사회나 종교나 심지어 가족을 위해서 태어난 것도 아니다.
나는 나의 행복과 내 영혼의 진화를 위해 이 땅에 태어났다.
나는 나를 존중하고 사랑하며, 나를 사랑하는 꼭 그만큼 가족과 이웃, 더 나아가 모든 사람, 모든 생명, 모든 의식과 우주를 존중하고 사랑한다. 모든 경쟁과 폭력과 불행이 결국 돈과 물질을 근본으로 삼는데서 출발함을 깨달아, 안으로는 절제와 자급자족을 생활화하고 밖으로는 자연과 이웃과의 평화와 공존을 추구한다.
오늘은 여기까지, 엄청난 내 삶의 헌장을 한꺼번에 써 내려가는 것은 좋지 않다. 조금씩 아껴 정리했다가 환갑에 선포하는 것은 어떨까? 아니면 어차피 내 혼자만의 헌장이니 좀 더 여유 있게 정리해서 죽기 전에 완성하는 것도 괜찮겠다. 내 장례식이 바로 선포식이 될 수 있게 말이다.
한마디 덧붙이고 싶다. 바로 그 위대한 국민교육헌장 선포자의 따님이 지금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꾀하시는 것을 보고 생각나는 말이다. 마치 뼛속에 새기듯 외운 국민교육헌장도 세월이 지나면 이렇게 조롱거리가 되어 식당에 내걸리기 십상이다. 하물며 교과서가 바뀌고 시험문제 몇 개 낸다고 해서 역사가 바뀌지는 않는다. 자칫 역사의 조롱거리로 남을 수도 있다.
우리는 민족 콩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조상의 빛난 콩을 오늘에 되살려 안으로 새로운 음식문화를 확립하고 밖으로 종자주권 수호에 이바지할 때다. 이에 우리의 나아갈 바를 밝혀 장사의 지표로 삼는다. (중략)
토종콩 수호와 민족정신에 투철한 애국애콩이 우리의 삶의 길이며,
나도 돈 벌고 손님들도 즐거운 행복세상을 실현하는 기반이다. 길이 후손에 물려줄 영광된 콩의 앞날을 내다보며,
신념과 긍지를 지닌 근면한 식당 주인으로서,
가족의 슬기를 모아 줄기찬 노력으로 새 역사를 창조하자.
형이 선비잡이 콩 요리점을 연다기에 장난삼아 선비잡이 콩 헌장을 써 봤다. 써 놓고 읽어보니 너무 재미있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삶의 의미를 대통령이 너무나도 간단하게 정의하고 국민을 교육하겠다는 독재적 발상과, 그걸 온 국민이 와글와글 외워야했던 웃지 못할 시대의 상징물을 가볍게 뒤집어 식당에 내 거는 격이니 그 반전과 조롱이 재미있는 것이다.
국민교육헌장.
1968년 12월에 선포됐고 이듬해인 69년, 당시 국민학교 3학년이던 나는 학교에서 그걸 기를 쓰고 외워야했다. 도대체 민족중흥이니 인류공영이니 하는 어려운 한자말이 무슨 뜻인지는 감히 생각할 수도 없었고 누구도 그 의미를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걸 다 외워야 집에 보내준다니까 온 교실이 떠나갈 듯 와글와글 외워서 선생님에게 검사를 받고서야 집에 왔던 기억만 남아있을 뿐이다. 얼마나 열심히 외웠으면 4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어쩌구 하는 구절이 머릿속에 또렷이 남아있을까?
그런데 우리는, 아니 나는 도대체 왜 태어난 것일까?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이 아니라면 무어란 말인가? 돈 벌기 위해서, 아빠와 남편노릇 잘하기 위해서, 혹은 행복하기 위해서 태어난 것일까? 그 답이야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어쨌든 독재자의 국민교육헌장이 오늘날 내 삶의 목적과 의미를 되새겨보는 단초가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의미가 있지 않나하는 엉뚱한 생각마저 든다.
하여 선포자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며 선포 47년이 지난 오늘, 나는 나만의 국민교육헌장, 아니 내 삶의 헌장을 선포해 볼까한다.
나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 따위를 띠고 이 땅에 태어나지 않았다. 민족통일이니 민중해방이니 하는 엄청난 명제를 위해 태어나지도 않았다. 회사나 지역사회나 종교나 심지어 가족을 위해서 태어난 것도 아니다.
나는 나의 행복과 내 영혼의 진화를 위해 이 땅에 태어났다.
나는 나를 존중하고 사랑하며, 나를 사랑하는 꼭 그만큼 가족과 이웃, 더 나아가 모든 사람, 모든 생명, 모든 의식과 우주를 존중하고 사랑한다. 모든 경쟁과 폭력과 불행이 결국 돈과 물질을 근본으로 삼는데서 출발함을 깨달아, 안으로는 절제와 자급자족을 생활화하고 밖으로는 자연과 이웃과의 평화와 공존을 추구한다.
오늘은 여기까지, 엄청난 내 삶의 헌장을 한꺼번에 써 내려가는 것은 좋지 않다. 조금씩 아껴 정리했다가 환갑에 선포하는 것은 어떨까? 아니면 어차피 내 혼자만의 헌장이니 좀 더 여유 있게 정리해서 죽기 전에 완성하는 것도 괜찮겠다. 내 장례식이 바로 선포식이 될 수 있게 말이다.
한마디 덧붙이고 싶다. 바로 그 위대한 국민교육헌장 선포자의 따님이 지금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꾀하시는 것을 보고 생각나는 말이다. 마치 뼛속에 새기듯 외운 국민교육헌장도 세월이 지나면 이렇게 조롱거리가 되어 식당에 내걸리기 십상이다. 하물며 교과서가 바뀌고 시험문제 몇 개 낸다고 해서 역사가 바뀌지는 않는다. 자칫 역사의 조롱거리로 남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