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왜 한국인들은 사람을 믿지 못할까 일본으로 가족여행을 떠났을 때의 일이다. 삿포로에 있는 한 작은 숙소에 체크인을 하자 주인이 앞장서서 방을 안내해줬다. 이것 저것 설명을 하더니 마실 물은 주전자 안에 들어있다고 알려준다. 잠시 후 주인이 떠나자, 어머니께선 얼마나 오래된 물인지 모르니 차라리 밖에서 생수를 사먹자고 하셨다. 밤 늦게까지 시내 여행을 즐기고 숙소로 돌아왔는데 생수 산다는 것을 깜빡했다. 목은 점점 마르고 어쩔 수 없이 주전자를 열어 보니, 놀랍게도 안에는 방금 새로 갈은 것으로 보이는 깨끗한 얼음과 물이 들어있었다. 주전자 속 얼음물을 보자 순간 아차 싶었다. 우리는 왜 호텔 주인의 말을 믿지 않았을까. 한국에서는 무엇이든 의심부터 하고 보는 것이 기본적인 생활 태도였다. 흔히 말하는 '호갱'이 되지 않기 위한 자세가 몸에 배여 있었다. 당연했던 고정관념이 일본에서 무너지자 내가 살던 곳이 어떤 사고방식이 요구되는 사회인지를 되짚어봤다. 일상에서도 신뢰가 없는 한국, 왜? 한국은 일상에서조차 신뢰가 없는 세상이었다. 버스가 역에 도착하기도 전에 자리에서 일어나는 승객들은 성질머리가 급해서가 아니다. 나를 버려두고 버스가 급하게 떠날 거라 예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인은 본성이 급한 게 아니다. 상대를 믿지 못해서 남들보다 빠르게 가고 싶을 뿐이다. 유행처럼 남발되는 '헬조선'이라는 말은 무정부상태에 가까운 의미다. 한국인들은 더 이상 정부와 사회를 믿지 않는다. 헬조선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사나운 맹수가 언제 내 목덜미를 물어 채갈지도 모르는 초식동물과도 같은 삶이다. 불신이 활개치고 지켜줄 이도 없으니 스스로 몸을 사려야 살아남는다. 배가 침몰하고 사람들이 죽어나간 지 오래 되었지만 규정과 단속이 개선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가습기 살균제로 수백 명이 죽었지만 책임자는 없다. 제품의 포장은 화려하지만 질과 양은 형편없고 대체상품은 찾기 어렵다. 천연의 방법으로 만들었다는 소금은 알고 보니 불결한 환경에서 만들어지지만 규제를 제시하는 이는 없다. 신뢰를 쌓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믿기 위한 일종의 장치가 있어야 한다. 흔히 서구사회의 기초를 이루고 있다는 '계약'이 그것이다. 계약에서 당사자 둘만 있다면 공정성을 보장하기 어렵다. 계약의 표준안을 제시하고 중재해줄 제 3자가 있어야 한다. 이를 국가에 대입하면 국민은 계약의 당사자이고 정부는 제 3자에 속한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계약 당사자의 기대만큼 제 3자의 역할을 충분히 하지 못하고 있다. 중재를 하는 순간 민원이 쏟아지고 책임질 일만 늘어나니 최대한 몸을 사린다. 개입자가 없어지자 서로가 속고 속이는 불신지옥이 펼쳐진다. 규칙과 약속은 없어지고 관행과 효율이라는 원칙없는 말들이 나온다. 유독 한국의 도로에서 클랙슨과 고함 소리가 많은 것은 그 지옥같은 도로를 장악하고 지지대를 세워줄 제대로 된 계약과 파수꾼이 없다는 증거다. 운전미숙자를 양성하는 제도 아래에서 운전자들이 클락션을 울려대는 것은 험악한 도로 위에서 살아남기 위한 자연스러운 본능이다. 신뢰가 없어진 사회는 이처럼 각자가 살기 위해 내뿜는 스트레스로 지치고 멍들어간다. / 이승정 (기사바로가기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170102) |
[김승효 엄마의 선택]왜 한국인들은 서로 믿지 못할까
한 해의 끝자락이다. 일상적으로 사람이란 환경에 지배받기도 하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감정이 변화되는 것을 느끼기도 하지만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이하는 때가 되면 그러한 감정이 더욱 격심하게 든다. 새삼스레 지난 시절에 대한 상기로 후회와 아쉬움을 토로하고 그러한 마음을 흘려보내고 나면 새롭게 다가오는 시간들에 대한 원대한 포부를 내비치며 앞으로의 계획을 설계하고 긍정적인 희망과 함께 확고한 다짐을 하게 된다. 그러나 좀 더 골똘히 생각해보자. 매년 똑같은 후회와 다짐과 희망을 반복하고 있지는 않은지.
올 한해 ‘헬조선’ ‘금수저’ 등의 유행어로 표현되는 한국의 현실에 불행하고 배가 침몰하고 아이들이 죽어나간 지 오래인데 여전히 진실이 불투명한 한국의 현실에 분노하고 하루에 평균 6명꼴로 청년들이 자살하는 한국의 현실에 좌절하고 나라를 걱정하는 노동자, 농민을 향해 물총과 수갑으로 재갈을 물리는 한국의 현실이 개탄하고 지금도 곳곳에서 믿을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한국의 현실에 절망한다. 생지옥이나 다름없는 한국의 현실 속에 <왜 한국인들은 사람을 믿지 못할까>는 불신이 일상이 된 한국인의 모습을 글쓴이의 눈으로 들여다본다. 원칙 없고 책임 없는 정부는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고 규칙과 약속이 이행되지 않는 사회를 바라보는 각자의 마음속에 있는 불신이 똬리를 틀고 앉아 시시때때로 고개를 내밀고, 일상적이고 무의식적으로 뿜어대는 불신의 마음이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고, 이처럼 신뢰가 없어진 사회에서 각자는 스스로 살기 위해 내뿜는 스트레스로 지치고 멍들어간다고 말이다.
그렇다면 불신지옥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현실 속에 펼쳐지는 지옥의 원인을 불신에서 찾는다면 오히려 간단할 수 있다. 불신을 없애면 된다. 그런데 불신의 마음을 어떻게, 무슨 방법으로 없애고 신뢰를 회복할 것인지 묻는다면, 그에 대한 대답은 간단하지만은 않다. 또한, 국가나 정부의 입장은 들을 수 없으니 차치하더라도 각자 ‘나는 국가, 사회, 사람에 대해 얼마큼 신뢰하고 있는가? 신뢰의 정도를 가늠했다면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에 대한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져봐야 한다. 이 또한 간단할 리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깜깜한 동굴벽면을 향한 시선을 돌려 빛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 것처럼 그것들에 관해 깊이깊이 생각해봐야 한다.
<오마이뉴스> 왜 한국인들은 사람을 믿지 못할까
일본으로 가족여행을 떠났을 때의 일이다.
삿포로에 있는 한 작은 숙소에 체크인을 하자 주인이 앞장서서 방을 안내해줬다. 이것 저것 설명을 하더니 마실 물은 주전자 안에 들어있다고 알려준다. 잠시 후 주인이 떠나자, 어머니께선 얼마나 오래된 물인지 모르니 차라리 밖에서 생수를 사먹자고 하셨다.
밤 늦게까지 시내 여행을 즐기고 숙소로 돌아왔는데 생수 산다는 것을 깜빡했다. 목은 점점 마르고 어쩔 수 없이 주전자를 열어 보니, 놀랍게도 안에는 방금 새로 갈은 것으로 보이는 깨끗한 얼음과 물이 들어있었다.
주전자 속 얼음물을 보자 순간 아차 싶었다. 우리는 왜 호텔 주인의 말을 믿지 않았을까. 한국에서는 무엇이든 의심부터 하고 보는 것이 기본적인 생활 태도였다. 흔히 말하는 '호갱'이 되지 않기 위한 자세가 몸에 배여 있었다. 당연했던 고정관념이 일본에서 무너지자 내가 살던 곳이 어떤 사고방식이 요구되는 사회인지를 되짚어봤다.
일상에서도 신뢰가 없는 한국, 왜?
한국은 일상에서조차 신뢰가 없는 세상이었다. 버스가 역에 도착하기도 전에 자리에서 일어나는 승객들은 성질머리가 급해서가 아니다. 나를 버려두고 버스가 급하게 떠날 거라 예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인은 본성이 급한 게 아니다. 상대를 믿지 못해서 남들보다 빠르게 가고 싶을 뿐이다.
유행처럼 남발되는 '헬조선'이라는 말은 무정부상태에 가까운 의미다. 한국인들은 더 이상 정부와 사회를 믿지 않는다. 헬조선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사나운 맹수가 언제 내 목덜미를 물어 채갈지도 모르는 초식동물과도 같은 삶이다. 불신이 활개치고 지켜줄 이도 없으니 스스로 몸을 사려야 살아남는다.
배가 침몰하고 사람들이 죽어나간 지 오래 되었지만 규정과 단속이 개선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가습기 살균제로 수백 명이 죽었지만 책임자는 없다. 제품의 포장은 화려하지만 질과 양은 형편없고 대체상품은 찾기 어렵다. 천연의 방법으로 만들었다는 소금은 알고 보니 불결한 환경에서 만들어지지만 규제를 제시하는 이는 없다.
신뢰를 쌓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믿기 위한 일종의 장치가 있어야 한다. 흔히 서구사회의 기초를 이루고 있다는 '계약'이 그것이다. 계약에서 당사자 둘만 있다면 공정성을 보장하기 어렵다. 계약의 표준안을 제시하고 중재해줄 제 3자가 있어야 한다. 이를 국가에 대입하면 국민은 계약의 당사자이고 정부는 제 3자에 속한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계약 당사자의 기대만큼 제 3자의 역할을 충분히 하지 못하고 있다. 중재를 하는 순간 민원이 쏟아지고 책임질 일만 늘어나니 최대한 몸을 사린다. 개입자가 없어지자 서로가 속고 속이는 불신지옥이 펼쳐진다. 규칙과 약속은 없어지고 관행과 효율이라는 원칙없는 말들이 나온다.
유독 한국의 도로에서 클랙슨과 고함 소리가 많은 것은 그 지옥같은 도로를 장악하고 지지대를 세워줄 제대로 된 계약과 파수꾼이 없다는 증거다. 운전미숙자를 양성하는 제도 아래에서 운전자들이 클락션을 울려대는 것은 험악한 도로 위에서 살아남기 위한 자연스러운 본능이다. 신뢰가 없어진 사회는 이처럼 각자가 살기 위해 내뿜는 스트레스로 지치고 멍들어간다. / 이승정 (기사바로가기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170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