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민언련과 지역언론 기자들은 어떤 사이일까? 충북민언련이 언론감시운동을 하는 시민사회단체이다보니 지역언론에 몸담고 있는 기자들로서는 좀 걸끄럽게 받아들일 수도 있겠다. 아니 불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민언련이 뭐하는 단체인지, 제대로 모르는 분들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민언련 활동의 의의를 높게 평가해주고 지역언론의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 서로간의 모색의 힘이 필요하다는 걸 공감해주는 기자들도 많다. 충북민언련에는 언론인들도 회원으로 가입해 단체 활동을 후원하고 조언을 아끼지 않는 분들이 많다.
지역언론 현실적 문제들 짚어 줘
▲ 강신욱 회원님 (2009년 정기총회때 모습)
강신욱 뉴시스 기자도 그런 분들 가운데 대표주자이다. 강기자는 지난 2006년 충북민언련을 찾아와 회원가입을 했다. 그 이후로도 가끔씩 기회가 될 때마다 지역언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왔다. 현실적인 어려움 내지는 언론계 돌아가는 생리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이해를 넓힐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
강신욱 기자님과는 지금도 잊지 못할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충북민언련 봄 산행으로 주흘산엘 간 적이 있었는데 참가자가 많지 않았다. 사실상 사무국 식구들을 빼면 유일한 회원 자격으로서 참가자였다. 늘 바빠서 등산할 틈도 없을 그로서는 산행은 만만치 않았을 터. 그날 등산 후 며칠을 앓았다는 이야기를 나중에서야 들었다. 어쨌든 주최측으로서도 민망하기 짝이 없었고, 고마움도 두 배로 컸다. 그 이후로 정이 도타워졌음은 물론이다.
오랜만에 강신욱 기자를 찾아갔다. 뉴시스로 적을 옮긴 후 증평, 진천, 괴산, 음성 지역을 담당하고 있었기에 전처럼 쉽게 만나기가 어려웠다. “매번 한번 찾아뵐게요” 했다가 해를 넘겨 약속을 지켰다. 간만에 점심을 먹으며 마주앉아 이런저런 이야기 꽃을 피웠다. 역시나 주제는 ‘언론’ 이다. 언론 보도의 아쉬운 점을 이야기하면 왜 그렇게 밖에 보도하지 못하는 지의 현실적인 문제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충북민언련에 바란다
충북민언련에서 올해는 지역 언론인들과 보폭을 좀 더 좁힐 수 있는 ‘대화’를 많이 해나갈 것이라는 계획이라고 하자 꼭 필요한 부분이라고 반가워했다. 언론인들 역시 독자, 지역주민과의 만남의 자리를 갖게 된다면 느끼게 되는 바가 많을 것 같다고 했다. 지역언론에 대한 무관심을 깨보는 계기가 될 수 있을지 모른다며 민언련이 더 열심히 해야 할 것이라 했다. 매해 열리는 언론학교를 보면 진보 쪽 인사들로 주로 구성되는데 좀 더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직업병 아닌 직업병
밥을 먹다보니 왼 손목에 파스를 붙인 것이 눈에 들어왔다. 어쩐 일인지 묻자 직업병 아닌 직업병이 생겼다고 한다. 직업병은 손목과 어깨에만 찾아온 것이 아닌가 보다. 일상생활에서도 기자라는 직업병(?) 때문에 부인과 아이들로부터 비판을 받는다며 웃는다. 대화에서 제 3자처럼 말하거나, 미리 결론부터 내려놓고 말해서 부인에게 원망을 듣기도 한단다. 늘 바쁜 기자로서 살기에 집안일에는 소홀 할 수밖에 없고, 식구들의 이야기를 차분하게 들어줄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게 될 때마다 고쳐야지 하고 결심을 하지만 잘 고쳐지지 않는단다.
이제 얼마 있으면 기자생활도 20년이 된다는 강신욱 기자님은 기자가 하고 싶어서 된 것은 아니었지만 후회는 없다며 현장으로 돌아갔다.
회원탐방 14- 강신욱 회원님 (뉴시스 기자)
민언련을 후원하는 기자들충북민언련과 지역언론 기자들은 어떤 사이일까? 충북민언련이 언론감시운동을 하는 시민사회단체이다보니 지역언론에 몸담고 있는 기자들로서는 좀 걸끄럽게 받아들일 수도 있겠다. 아니 불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민언련이 뭐하는 단체인지, 제대로 모르는 분들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민언련 활동의 의의를 높게 평가해주고 지역언론의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 서로간의 모색의 힘이 필요하다는 걸 공감해주는 기자들도 많다. 충북민언련에는 언론인들도 회원으로 가입해 단체 활동을 후원하고 조언을 아끼지 않는 분들이 많다.
지역언론 현실적 문제들 짚어 줘
강신욱 뉴시스 기자도 그런 분들 가운데 대표주자이다. 강기자는 지난 2006년 충북민언련을 찾아와 회원가입을 했다. 그 이후로도 가끔씩 기회가 될 때마다 지역언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왔다. 현실적인 어려움 내지는 언론계 돌아가는 생리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이해를 넓힐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
강신욱 기자님과는 지금도 잊지 못할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충북민언련 봄 산행으로 주흘산엘 간 적이 있었는데 참가자가 많지 않았다. 사실상 사무국 식구들을 빼면 유일한 회원 자격으로서 참가자였다. 늘 바빠서 등산할 틈도 없을 그로서는 산행은 만만치 않았을 터. 그날 등산 후 며칠을 앓았다는 이야기를 나중에서야 들었다. 어쨌든 주최측으로서도 민망하기 짝이 없었고, 고마움도 두 배로 컸다. 그 이후로 정이 도타워졌음은 물론이다.
오랜만에 강신욱 기자를 찾아갔다. 뉴시스로 적을 옮긴 후 증평, 진천, 괴산, 음성 지역을 담당하고 있었기에 전처럼 쉽게 만나기가 어려웠다. “매번 한번 찾아뵐게요” 했다가 해를 넘겨 약속을 지켰다. 간만에 점심을 먹으며 마주앉아 이런저런 이야기 꽃을 피웠다. 역시나 주제는 ‘언론’ 이다. 언론 보도의 아쉬운 점을 이야기하면 왜 그렇게 밖에 보도하지 못하는 지의 현실적인 문제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충북민언련에 바란다
충북민언련에서 올해는 지역 언론인들과 보폭을 좀 더 좁힐 수 있는 ‘대화’를 많이 해나갈 것이라는 계획이라고 하자 꼭 필요한 부분이라고 반가워했다. 언론인들 역시 독자, 지역주민과의 만남의 자리를 갖게 된다면 느끼게 되는 바가 많을 것 같다고 했다. 지역언론에 대한 무관심을 깨보는 계기가 될 수 있을지 모른다며 민언련이 더 열심히 해야 할 것이라 했다. 매해 열리는 언론학교를 보면 진보 쪽 인사들로 주로 구성되는데 좀 더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직업병 아닌 직업병
밥을 먹다보니 왼 손목에 파스를 붙인 것이 눈에 들어왔다. 어쩐 일인지 묻자 직업병 아닌 직업병이 생겼다고 한다. 직업병은 손목과 어깨에만 찾아온 것이 아닌가 보다. 일상생활에서도 기자라는 직업병(?) 때문에 부인과 아이들로부터 비판을 받는다며 웃는다. 대화에서 제 3자처럼 말하거나, 미리 결론부터 내려놓고 말해서 부인에게 원망을 듣기도 한단다. 늘 바쁜 기자로서 살기에 집안일에는 소홀 할 수밖에 없고, 식구들의 이야기를 차분하게 들어줄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게 될 때마다 고쳐야지 하고 결심을 하지만 잘 고쳐지지 않는단다.
이제 얼마 있으면 기자생활도 20년이 된다는 강신욱 기자님은 기자가 하고 싶어서 된 것은 아니었지만 후회는 없다며 현장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