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극장으로 천만 갑시다

이재표
2015-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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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표의 보이는 마을]다이빙벨 유트브에 뜨다

고교시절, 선망의 대상은 가수나 탤런트가 아니었다. 첫째는 시를 잘 쓰는 시인들이었고 둘째는 기자였다. 그래서인지 나는 시인을 꿈꾸는 기자로 산다. 그 당시 내가 좋아했던 기자들은 박학다식하거나 필력이 있는 기자들이었다. 지금은 접하는 것조차 사양하는 신문이지만 당시에는 조선일보 이규태 주필이 쓴 ‘이규태 코너’를 빠짐없이 읽었고, 그가 쓴 단행본도 사서 읽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를 출퇴근(?)하고 사회에 진출하면서 시인 또는 기자를 꿈꾸었으나 어느 하나 쉽지 않았다. 당시 신문을 읽으며 지역신문 기자들 중에서도 마음 속 멘토로 삼은 선배들이 있다. 그 중 한 선배와 같은 회사에 근무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2년여 만에 건진 것이 불교방송 기자였다. 방송기사는 패턴이다. 그 패턴은 일종의 공식 같은 것이어서 거기에 팩트를 입력하면 기사가 된다. 적어도 기사를 쓰는 공학은 그렇다. 결국 차별성은 기획에서 나온다. 그래서 기획에 관심을 갖게 됐다. 15분짜리 세미다큐 연작을 만들다가 고가의 녹음기를 분실했다. 개인 돈으로 변상해야했고 작업은 중단됐다.

시사주간지 충청리뷰의 기자가 되면서부터는 ‘실체적 진실’에 관심을 갖게 됐다. 수뢰, 비리, 선거법 위반 같은 내용들을 물고 늘어졌다. “아버지가 무서워 자살했다”고 보도된 한 고교생의 자살 뒤에는 “자퇴각서에 부모님 사인을 받아오라”고 보낸 학교가 있었다. 치가 떨렸고 투쟁하는 심정으로 취재하고 썼다.

기획을 통해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는 또 다른 보도방식에 매료됐지만 실천에 옮기지는 못했다. 한겨레21이 보여준 ‘노동 OTL’에 찬사를 보내며, 같은 방식의 원조라 할 수 있는 독일기자 ‘귄터발라프’의 책을 읽었다. 염색을 하고 써클렌즈를 낀 채 터키에서 온 이주노동자로 위장하고 살았던 2,3년의 기록이었다. 그는 독일사회의 부끄러운 민낯을 고스란히 폭로했다. 접근해야할 진실들이 쌓여있고, 접근할 수 있는 무기를 갖고 있음에도 앵무새 노릇만 하는 일부 유력언론의 기자들을 보면 솔직히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한때 지역의 주간지 기자가 품은 자격지심이라고 비웃어도 좋다.

이에 반해 단기필마로 적진을 향해 달려드는 돈키호테와 같은 기자들에 대해서는 선후배를 떠나서 존경의 마음을 갖게 되며, 때로는 질투심도 느낀다. 매체가 무엇이든 상관이 없다. 그런 기자 가운데 한 사람이 고발뉴스의 이상호 기자다.  이상호 기자가 세월호 참사 500일을 맞아 세월호 참사를 기록한 다큐멘터리 ‘다이빙벨’의 무삭제 감독판을 유튜브에 무료로 공개해 이목을 끈다. ‘다이빙벨’을 공동 연출한 이상호 기자는 1일 자신의 트위터에 “감옥 갈 각오로 ‘다이빙벨’ 무료 공개합니다. 정부가 이 영화 왜 막는지 보시면 압니다”라며 “대형극장 단 한곳도 걸어주지 않았던 영화, 손바닥극장으로 1000만 갑시다. 국민의 힘 보여주시길”이라고 밝혔다.

아침잠을 포기하고 출근시간 전에 다 봤다. 솔직히 몰랐던 사실을 새로 알게 된 것은 없다. 그러나 국민의 힘을 보여주자는 그의 말에 공감한다. 지역에서 지게차에 수신호를 보내던 노동자가 차에 깔려죽었다. 단순 찰과상이라고 119구급차를 돌려보내고 수십 분을 방치했다가 승합차로, 그것도 굳이 회사지정병원에 데려간 결과다. 그런데 세상이 잠잠하다. 세월호 운운하면 “이제 그만하자고” 목소리를 높이는 모질디 모진 세상이다. 아무 것도 해결하지 않고 500일이 흘러, 언제까지 갈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다이빙벨 보러 가기 https://youtu.be/t1lQ6OmMDz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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