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인간은 존엄하다

이은규
2015-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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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규의 눈]“만나지 못하는 가족 사이 놓인 것이 휴전선만은 아니다'

모든 사람은 존엄하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 예외는 없다. 이것은 마땅히 그래야 하는 당위이다. 그러나 헬조선이라 불리우는 여기 대한민국은 일부 사람만 존엄하다. 일부 소수의 사람들이 그들만의 관계속에서 평등하게 안주한다. 그리고 예외가 일반화 되는 가운데 특권이 난무한다.

헌법? 법률? 그게 다 무엇이란 말인가? 권력과 자본 앞에서는 휴지처럼 구겨지고 간단히 무시되어 버리기 일쑤다. 기초질서 확립 운운하며 무관용을 떠들기 전에 헌법과 법률에 명시된 원칙과 기준을 준수하는 권력을 바라는 것이 상식일진데 비상식이 상식이 되어버리고, 비정상이 정상이 되어버린 세상에서 사람들은 사람다움을 포기해야만 하는지...

지켜져야 하고 보장되어져야 할 가치와 권리들은 사회적 약자들의 생명선과 같다. 각자 알아서 생존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장애인은 더욱더 고립되어진다. 어디 장애인뿐이겠는가?

이번에 소개할 기사는 경향신문 배장현 기자의 “만나지 못하는 가족 사이 놓인 것이 휴전선만은 아니다.”이다. 연휴의 풍성함과 나른함 속에서 지금 여기 우리들에 현실을 정직하게 바라보는 기사가 반가웠다. 제도와 법률, 돈 이전에 사람이 우선이며 예외 없이 모든 사람이 함께 존엄하고 평등하게 행복을 누리기를 바래본다. (기사에 언급된 충북 청양은 충남 청양이리라 ^^)

 

만나지 못하는 가족 사이 놓인 것이 휴전선 만은 아니다

추석을 사흘 앞둔 지난 24일 오후 2시30분, 인천 계산동 민들레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는 때이른 차례상이 차려졌다. 차례에는 휠체어를 탄 센터 이용 장애인 19명이 참석했다. 차례는 엄격한 절차 없이 치러졌다. 원하는 참석자에 한해 술을 올리는 것이 전부였다. 큰절을 하기 힘든 이 차례의 참석자들은 모두 목례를 하거나 두손을 모아 기도를 했다. 직접 전동휠체어를 움직여 제상 앞에 가 술을 올리고, 다시 휠체어를 빼는 과정이 간단치 않아 차례는 30여분 간 진행됐다. 이날 차례에 참석한 이들 대부분은 고향이 있지만 돌아갈 방법이 없다.

마지막으로 제상에 술을 올린 노푸름씨(25)는 올해로 5년째 충북 청양에 있는 큰댁 명절 제사에 참석하지 못했다. 대형트럭을 모는 노씨의 아버지는 일이 바빠 명절을 잘 챙기지 못한다. 명절을 쇠려면 노씨 스스로 큰댁에 가야 하지만 노씨가 자력으로 충북 청양에 닿는 것은 불가능하다. 노씨가 전동휠체어를 타는 지체장애인이기 때문이다.

▲ 푸름씨가 24일 인천 민들레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열린 합동차례에서 술을 올린 후 절을 하고 있다. 출처:경향신문

“제가 타는 전동휠체어는 접을 수도 움직일 때마다 분해할 수도 없어요.” 노씨가 말했다.

인천에서 노씨의 발이 돼 주는 장애인 콜택시는 시내운행만 해 가능한 선택지가 아니다. 리프트가 있는 기차를 타고 가자니 청양 큰댁에서 가까운 예산역까지는 차로 족히 40분이 걸린다. 결국 유일하게 상상 가능한 이동수단은 시외버스다. 지역에서 지역까지 가장 접근성이 좋은 수단이련만, 시외버스를 생각하면 노씨는 가장 큰 절망감을 느낀다. 지난해 10월을 기준으로 전국 1905대 고속버스와, 7669대 시외버스 중에 노씨의 전동휠체어를 실을 수 있는 저상버스는 단 한 대도 없다.

사정이 이러하다보니 불과 40km 밖에 부모님댁을 두고도 이산가족처럼 지내는 사연도 있다. 자립하기 위해 5년 전 경기도 의정부로 주거지를 옮긴 정현재씨(38)의 고향은 경기도 연천군 백학면이다. 정씨는 지난 설에 5년 만에 휠체어리프트가 있는 지인의 차를 ‘호의’로 얻어타고 처음 고향에 갔다. 호의는 지속된다는 보장이 없다. 장남인 정씨는 며칠 전 연로한 아버지에게 “이번 추석 명절에 집에 갈 수 없다”고 전화를 드렸다. “휴전선이 가로막고 있는 사람들만 이산가족인가요.” 정씨가 말했다. 정씨는 올 추석도 방에서 TV에서 나오는 가족 프로그램을 보며 혼자 지낼 예정이다.

노씨와 정씨를 구제할 법률이 없는 것은 아니다. 2005년 제정된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에 관한 법률’ 제3조에는 “교통약자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보장받기 위하여 교통약자가 아닌 사람들이 이용하는 모든 교통수단, 여객시설 및 도로를 차별 없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하여 이동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돼 있다. 또 지난 7월10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6부(부장판사 지영난)는 장애인 김모씨가 시외버스회사들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피고 금호고속과 명성운수가 장애인,노인·영유아 등 ‘교통약자’를 위해 고속·시외버스에 승하차 편의시설을 설치하라”고 판시했다. 버스회사에게 적극적으로 시설설치할 것을 명한 획기적인 판결이었지만, 이번 추석 노씨와 정씨를 데려다 줄 시외버스는 아직 단 한 대도 없다.
 

노씨에게는 소박한 바람이 있다. 초등학교 때 바쁜 엄마 대신 돌봐 준 할머니의 묘소를 찾아 자신이 번 돈으로 술을 올리는 것이다. 2년 전 돌아가신 노씨의 할머니는 초등학교 때 노씨를 업고 6년 간 하루 두 번 통학을 시켜주었다. 2년 전 그날, 노씨는 정신없이 청양으로 내려간 부모님 뒤에 혼자 남겨져 울었다. 노씨는 올해 직장을 잡았다. 제주(祭酒)를 살 돈은 있지만, 한번도 가보지 못한 할머니의 묘는 여전히 휴전선 너머만큼 멀다.
 

(기사바로가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09271533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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