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교과서 밀어붙이는 일사분란함

이재표
2015-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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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표의 보이는 마을]조선일보가 말하는 국정교과서

역사는 정치적이다. 정치보다 더 정치적이다. 역사는 흘러간 것이지만 현재를 읽는 도구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역사는 지층 같은 것이어서 같은 시대라고 하더라도 민초부터 권력자들까지 다양한 삶의 결들이 딴딴하게 다져져 있다. 어떤 부분을 캐내고 어떤 시각으로 들여다보느냐에 따라 다른 시대정신이 읽힌다. 에드워드H. 카가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상호작용의 부단한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와의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말한 것도 같은 의미다.

난데없이 역사교과서를 ‘국정화’하자고 난리다. 여당의 주장은 그동안의 검인정 역사교과서가 좌편향이라는 것이다. 도대체 어떤 부분이 좌편향인지 이해할 수도 없으려니와 왜 갑자기 일사불란하게 이 문제를 들고 나오는지도 의아할 따름이다. 검인정 교과서도 집필기준이 있고 감수를 받아야하는 상황에서 그들의 표현대로 ‘좌편향 국사교과서’가 판을 치도록 방치한 책임은 없느냐는 얘기다.

▲ 국사교과서국정화반대 촛불집회 모습. 출처:경향신문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가벼워졌다. 보수 정치인들은 그렇다 치고 학계도, 언론도 보수의 지성은 실종됐다. 대한민국은 완벽한 독재국가다. 보수의 기준은 대통령이다. 대통령을 기준으로 왼쪽에 있는 것은 다 좌편향이 된다. 여당은 입속의 혀와 같다. 이승만을 국부로 추앙하고 광복 70주년이 건국 70주년이 될 판이다. 헌법에 반하는 쿠데타적 발상들이 일사불란하게 제기되고 있다. 대통령의 생각이 위험하다. 그리고 그 생각의 배후가 궁금할 따름이다.

조선일보가 1974년의 국정 국사교과서를 찬양했다고 한다. 조선일보가 말하는 완벽한 국정교과서란 이런 것이다.

뷰스앤뉴스 <조선일보>, 1974년 국정교과서가 '정확하고 수준 높다'?

<조선일보>는 12일 한국사교과서 국정화를 기정사실화하면서 '필진 공모만으론 한계...최고 수준의 학자들 삼고초려해야'라는 3면 기사를 통해 정부에 '완벽한 국정교과서'를 주문했다.

<조선일보>는 특히 '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찬성하는 사람들은 1974년 처음 간행된 국정 국사 교과서를 모델로 든다'면서 '김철준 서울대 교수(한국고대사), 민병하 성균관대 교수(고려시대사), 한영우 서울대 교수(조선시대사), 윤병석 인하대 교수(한국근현대사) 등 각 분야의 최고 전문가들이 집필을 맡아 정확하고 수준 높은 교과서를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는다'며 '1974년판 국정교과서'를 극찬했다.

<조선일보>는 이어 '이들에 비해 검정제 도입 이후 국사 교과서의 필진은 무게감이 크게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라며 국정교과서 이후 검인정 교과서들의 질을 폄하하기도 했다.

과연 <조선일보> 주장대로 1974년 국정교과서는 '정확하고 수준 높은 교과서'였을까.

서울대 국사학과 출신인 유기홍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얼마 전 국정감사때 공개한 1974년판 국사 국정교과서를 보면 그렇지 않다.

국사교과서 국정화는 1972년 10월 유신을 선포한 박정희 정권의 지시로 1974년 배포됐다.

1974년판 국정교과서 259쪽을 보면 ‘5월 혁명’이라는 소제목 아래 “이와 같이, 정부가 무능하고 부패하여 사회는 혼란과 불안에 빠졌고, 이 혼란한 틈을 타서 북한 공산집단이 야심을 품을 정도까지 이르렀다. 이 때, 국가와 민족을 수호하기 위하여 뜻있는 군인들이 혁명을 일으켰는데, 이것이 5.16 혁명”이라며 “4.19 의거가 독재에서 나라를 구하려는 혁명이었다면, 5.16 혁명은 혼란과 공산 위협으로부터 나라를 지키려는 혁명”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10월 유신’에 대해서는 “평화적 통일을 조속히 달성하기 위하여 정부는 10월 유신을 단행하였다”며 “이로부터 사회의 비능률적, 비생산적 요소를 불식하고 전근대적 생활의식과 사대사상을 제거하여 한국 민주주의 정립을 추진하고 있다”고 예찬했다.

이같은 1974년판 국정교과서를 <조선일보>가 '정확하고 수준 높다'고 평가한다는 것은 5.16 쿠데타와 10월 유신에 <조선일보>도 전폭적 동조를 하고 있다는 얘기에 다름 아닌 셈이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대목은 1974년판 국정교과서의 '10월 유신' 예찬 등은 박근혜 대통령이 과거에 썼던 일기 내용과 '판박이'라는 사실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 1981년 10월 28일 일기서 “유신 없이는 아마도 공산당의 밥이 됐을지도 모른다...시대 상황과 혼란 속에 나라를 빼앗기고 공산당 앞에 수백만이 죽어갔다면 그 흐리멍텅한 소위 민주주의가 더 잔학한 것이었다고 말할지 누가 알 수 있으랴”라고 적었다.

그러던 박 대통령은 그후 2012년 대선때 자신의 인혁당 발언이 거센 파문을 일으키며 지지율이 폭락하자 그해 9월24일 기자회견을 통해 '정치에서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음은 과거에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래야 할 민주주의 가치라고 믿는다'며 '5.16, 유신, 인혁당 사건 등은 헌법 가치가 훼손되고 대한민국의 정치발전을 지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생각한다'며 대국민사과를 해야 했다.

과연 박 대통령 지시로 새로 만들어질 국정교과서는 '5.16, 유신, 인혁당 사건'을 어떻게 기술할지, 벌써부터 궁금할 따름이다.    박태견 기자

(기사바로가기 https://www.viewsnnews.com/article?q=1247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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