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 대한 겸허함을 생각하다

이재표
2015-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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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표의 보이는 마을]사람이 시작이자 끝이다

똑똑하지만 날이 선 사람보다는 모자란 듯하면서도 부드러운 사람이 좋다. 아니 진짜로 똑똑한 사람은 불의와 타협하지 않으면서도 선한 사람의 가슴을 베는 불필요한 대립을 만들지 않는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며 주변 일을 좌지우지하려는 사람보다는 있는 듯 없는 듯 묵묵히 자기 일을 해내는 사람과 친하고 싶다. 오래 전부터 그렇게 생각해 왔다면 내 인생도 달라졌을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살아온 사람들이 부럽다.

내가 알고 있는 농부 중에 괴산에 ‘김의열’이라는 사람이 있다. 안다고 해서 친하다는 것은 아니다. 둘이서 술밥 한 번 먹은 적이 없으니 말이다. 다만 괴산농부들이 모여서 협동조합언론 ‘느티나무통신’을 만든다고 했을 때 관심을 갖고 지켜봤으며, 기사쓰기 교육을 하러 괴산을 방문한 적이 있다. 또 충북NGO센터에서 도내 NGO활동가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 <함께 가자 &GO>를 출간할 때 나는 그의 이야기를 집필했다. 그게 전부다.

▲ 괴산느티나무통신 운영을 맡고 있는 세분. 왼쪽부터 김의열 회계 총무 이사, 편집장 역할을 하는 차광주 이사장, 김주영 영상단장. ⓒ느티나무통신

서강대 종교학과를 나온 그는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살고 싶었다고 한다. 데모를 열심히 한 것도 아니고 운동권 주변에서 막걸리나 마셨다고도 했다. 공장으로 갈 자신은 없고 조직운동보다도 공동체가 좋아서 택한 자발적 가난이 ‘귀농’이라는 것이다. 김의열은 유기농 공동체인 솔뫼농장의 총무다. 귀농을 해서 알게 된 유기농은 그의 사고와 인생에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환을 가져왔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은 유기농을 한다는 선민의식이 부끄럽단다.

독일의 철학자 에른스트 슈마허는 저서 <작은 것이 아름답다>에서 “농사에 있어서 작물은 그 자체로 독자적인 시간을 사는 것인데, 인간이 그 과정에 개입하거나 마치 자신들이 생산한 것처럼 여긴다”고 지적했다. 농업이 아니라 농사가 맞고 농사는 곧 기다리는 일이라는 얘기다. 혹여라도 김의열 총무와 단둘이 술을 마신다면 평소에는 즐기지 않는 막걸리 한 주전자에 취하고 싶다.  괴산느티나무 통신에 실린 김의열을 글을 소개한다.
 

결국 사람이 시작이자 끝이 아닌가?

(기사바로가기 http://www.gsnews.or.kr/news/view.html?section=130&category=134&no=3308)

 

가끔 사람들에게 “왜 농촌에 내려왔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내가 처음 농촌을 선택한 20대 중반을 떠올려보면 요즘 귀농하는 사람들처럼 ‘도시생활이 싫어서’라든가 ‘농사를 짓고 싶어서’ 또는 ‘자연과 더불어 살고 싶어서’ 등등의 이유는 아니었다. 유기농업도 나중에 가톨릭농민회 활동을 하면서 알게 된 것이지 처음부터 유기농업을 생각하고 내려온 건 아니었다.

가장 큰 이유는 도시에서 직장을 잡고 일을 할 만한 실력이 모자라서였다. 간신히 대학을 졸업하긴 했지만 공부해 놓은 건 없고 마땅히 가진 자격증도 없어서 쏠쏠한 직장을 잡는다는 건 엄두도 못 냈다.

다른 이유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가졌던 부채의식 때문이었다. 내가 대학생활 동안 누린 시간들이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의 피땀 때문에 가능했다는 자책감, 그리고 그들과 더불어 살며 소박하지만 참다운 마을 공동체를 이루어 가는 게 조금이나마 그들에게 진 빚을 갚는 거라는 마음 때문이었다. 결국 농사가 좋거나 자연이 좋아서 농촌으로 내려왔다기보다는 농민들, 즉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살고 싶다는 마음이 우선이었다.

가톨릭농민회 활동을 하면서 알게 된 ‘유기농업’과 ‘유기농업의 세계관’은 그 당시 내 가치관에 ‘코페르니쿠스적인 혁명’을 가져다주었다. 유기농업은 내게 신앙이 됐다. 사람 중심의 생각에서 벗어나 자연이나 미물, 우주의 모든 생명까지 아우르는 협동하는 생명관을 갖게 됐다.

그러나 한쪽에서는 사람에 대한 냉소주의가 뭉게뭉게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사람만이 희망’이 아니고 ‘사람만이 암덩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량생산-대량소비-대량폐기의 악순환을 저지르며 끊임없는 욕망으로 지구 생명을 파괴하는 사람들의 문명이 한심해보였다.(나 역시도 그 파괴행위에 매일매일 함께 동참하고 있으면서 말이다.)

농촌도 마찬가지였다. 농사를 지으며 생명을 가꾸고 소박하게 오순도순 살아가는 농부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모든 게 돈으로 환산되고 돈을 위해서라면 독한 화학농약과 비료를 아무 죄책감 없이 뿌려대는 농민의 모습을 보며 그렇게밖에 할 수 없는 처지를 이해하면서도 안타깝고 실망스런 마음이 들었다. 성실하고 마음이 착해 내심 좋아하던 동네 형의 입에서 “도시놈들 먹게 하려면 농약을 더 뿌려야 된다.”는 말을 들었을 때의 충격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일반농사를 짓는 동네 형들과 멀어지게 됐다.

94년 유기농업에 뜻을 둔 지역의 형들과 ‘솔뫼농장’을 만든 것은 마을에서 미친놈들로 손가락질 당하던 외로움을 함께 달래보자는 뜻이 컸다. 판로나 농사기술은 다음 목표였다. 솔뫼농장 형들을 만나면 동병상련이 느껴졌고 마음이 편했다. 마음을 열고 함께 농사짓고 어울리고 동고동락했다. 그러는 사이 난 동네와 담을 쌓고 오로지 솔뫼농장 사람들하고만 어울리는 지역의 이방인이 되어갔다.

어느 순간부터 문득 다시 ‘사람’에 대한 생각이 고개를 들었다. 내 안에 또아리 틀고 있던 유기농업인이라는 선민의식이 점점 더 부끄러워졌다. ‘유기농업’ ‘생태’ ‘생명’을 외치면서 한편으로 내 마음 안에 독버섯처럼 자라던 사람에 대한 냉소와 차가운 비판의식을 응시하게 되면서, 주변사람들을 따뜻하게 바라보지 못하고 내 안의 가치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비판하는 내 모습을 되돌아보게 됐다. 유기농을 한답시고 작물을 제대로 보살피지 않는 나보다 농약을 치는 농부가 훨씬 더 성실하고 자기가 가꾸는 작물을 정성스레 보살피는 참 농부로 보였다. 돈을 위해 농사짓는 농부가 나보다 훨씬 더 검약하고 알뜰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10여 년 넘게 살던 삼송리를 떠나 이웃마을인 이평리로 이사를 와서는 더욱 동네와 동떨어진 생활을 했다. 지역에서 내 활동공간은 집과 논밭과 솔뫼농장이 전부였다. 괴산으로 출퇴근을 시작한 올해부터는 더더욱 동네와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다. 참말로 부끄럽고 미안한 일이다. 그러나 내 마음 안에서 유기농업을 한다는 선민의식은 없어진 지 오래다. 어려운 시절부터 유기농업을 함께 해오며 온갖 쓴맛과 단맛을 함께 경험한 솔뫼농장 형들과는 하늘같은 인연이다. 그렇다고 우리만이 옳고 더 나은 사람들이란 생각은 없다. 모든 이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고 나름대로의 아름다운 꿈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기에... 결국 다시 ‘사람만이 희망’임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결국 처음이자 끝은 사람이 아닌가?  / 김의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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