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 말이라고 무조건 따르고 싶은가?

이재표
2015-08-20
조회수 129

[이재표의 보이는 마을]우리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

10년 전 얘기다. 초등학교 5학년인 큰아들이 “축구선수가 되고 싶다”고 했다. 축구부가 있는 중학교를 졸업한 나는 “축구가 취미면 즐겁지만 선수가 되면 즐겁지 않을 수도 있다. 중학교 때 축구부가 되려면 초등학교 때부터 축구부가 있는 학교를 나와야한다”고 했다. 그렇게 말한 건 둘이서 공을 차 봐도 아들의 축구실력은 평균 이하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6학년 1학기 때 모범생이었던 아들은 2학기 때부터 불량학생이 됐다. ‘담임선생님이 아이들을 불평등하게 대한다’는 글을 학교 홈페이지에 올림으로써 분란이 시작됐고 졸업 석 달을 남겨놓고 인근학교로 전학을 가게 됐다. 그 학교인들 문제아를 받고 싶었겠는가? 그 학교에서 제일 노련한 할아버지 선생님이 담임이 되어 아이를 잘 달랬다. 아이는 순진하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한다고 하더니 그 짧은 기간(3개월)에 공부에 몰입, 중학교 반 편성고사에서 전교 10등 안에 들었다. 덕분에 반장도 됐다. 공부로 부모를 놀라게 한 건 그때 딱 한 번이다. 대신 다른 일로 부모를 놀라게 했다. 녀석은 머리를 기르고 싶었고 심지어는 염색도 하고 싶었다. 반장인데 반항하는 것은 학교로서도 위협요소였다. 연이틀 ‘미장원에 간다’며 돈을 받아갔다. 학교에서 ‘1cm 더, 또 1cm를 더’ 깎으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것이 자퇴의 이유가 됐다. 아들의 머리가 단정하기를 바랐지만 머리의 길이로 아이를 재는 학교는 나도 싫었다. 그리고 어드벤처가 시작됐다.

홈스쿨링을 시도해 보다가 결국 대안학교에 편입했다. 1학년 때는 몸으로 하는 공부에 치중하고 2학년 때는 자기만의 백과사전을 만들었으며 3학년 때는 1년을 바쳐 논문을 쓰는 학교였다. 쉽게 말해 농사짓고 밥 해먹고 목공하고 음악하고 축구하는 학교였다. 대안학교에 가면 스스로 고민하고 스스로 행동하는 아이로 변할 줄 알았다. 그러나 그 좁은 대안학교 안에서도 일반학교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이 다 일어날 수 있다. 다만 그 문제를 풀어가는 방식이 확연히 다를 뿐이다.

아들은 매일 같이 밴드에서 노래를 불렀고 매일 축구를 했다. 전교생이 30명인데 3개의 밴드가 있었다. 그때 깨달은 것은 우리 아들도 축구선수가 될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금발을 하고 파마를 하고 어깨까지 길렀던 머리는 이내 단정해졌다. 그리고 아이는 중졸 검정고시를 보고 다시 일반계 고등학교로 나왔다. 고교에 진학하지 말라는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말이다. 야간자습, 보충학습은 시켜본 적이 없다. 학과 성적은 끝에서 맴돌았다. 시내에 있는 실용음악학원에 다니며 학교를 다녔고 “오래 음악을 하고 싶으면 실용음악과를 가지 말거나 (지금) 대학을 가지 말라”는 아빠의 권고를 뒤로 하고 실용음악과에 보결로 입학했다. 그리고 2학년이 된 지금 “하고 싶은 음악을 해보다가 안 되면 실속 있게 살아보겠다”고 말한다.

아들에게 아빠의 권위로 ‘하지 말라’고 윽박지르지 않았다. 다만 “혹시 주먹질을 하더라도 네 생각에도 정의가 아닌데 친구들의 시선을 의식해 싸우지는 말라”고 권고했다. 또 “오토바이는 타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결국 두 가지도 다 해볼 만큼 해보고 나서야 끊었다(?). 분명한 것은 나의 판단도 아들의 판단도 틀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걸 확실히 인정하면 대화가 통한다. 내가 아들에게 확실히 앞선 것은 연륜이다. 그런데 세상의 변하는 속도를 보라. 그 연륜이 오히려 판단을 흐릴 수도 있다. 40대 후반인 나는 보수에 경도된 1987년의 ‘넥타이부대’를 이해할 수 없다. 나는 그 어른들을 따르고 싶지 않다. 아이들에게 꿈을 분명히 하라고? 목표가 확실하면 못 해낼게 없다고? 맞는 얘기다! 하지만 낼 모레면 50인데도 이리 헤매는데, 인생 초장에 이것저것 해보는 것이 무슨 문제란 말인가? 그래서 진짜 좋아하는 것을 찾을 수만 있다면….

<청주마실>우리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

(기사바로가기 http://www.cjmasil.com/news/articleView.html?idxno=998)

 청소년 직업체험기

우리는 4일간 <함께사는우리>라는 단체에서 주최한 직업탐방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이 프로그램은 청소년들이 미래에 어떠한 일을 할지 결정하기 쉽게 여러 흥미로운 직업을 체험하는 것이었다. 크게 세 가지의 직업들인 바리스타, 주민 센터 공무원, 방송국에서 일하시는 사람들에 대해 체험하였다.
 우리는 우선 바리스타의 일을 체험해보았는데, 바리스타는 커피를 만드는 직업으로 현재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직업 중 하나이다. 또한 커피의 종류가 다양해져 여러 가지 커피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아메리카노, 카페라떼, 에스프레소 등이 있다.

▲ 청주마실 인터넷 홈페이지

원두의 종류도 다양해지고 있다. ‘Coffee Drip’에서 근무하는 김영욱 바리스타는 핸드 드립으로 커피를 추출하는 방법에 대하여 가르쳐 주었다. 우선 생두가 원두가 되는 것과 그것의 차이를 배우고 원두로 유명한 두 나라의 원두를 직접 보고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에 대해 배웠다.

두 가지 원두를 이용하여 커피를 추출해보았는데, 콜롬비아 수프리모와 과테말라 테낭고를 2인 1조로 이루어 체험하였다. 그 다음에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비교적하기 쉬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만들어 보았다. 바리스타는 반복적인 학습을 통해서 형성되는 것으로 꾸준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해주셨다.

또한 바리스타가 되기 위해서는 마인드 컨트롤이 필요하다고 했다. 즉, 바리스타는 커피를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일종의 서비스업이기 때문에 표정관리가 중요하다고 했다. 비록, 우리가 직접 만든 커피가 별로이고 맛이 없고 쓰더라도 좋은 경험이었던 것 같았다.
 

두 번째로 체험해보았던 곳은 HCN방송국이었다. 이곳에서 방송국 PD, 카메라 감독, 아나운서를 만나보았다. 또한 중앙통제실에서 어떤 작업이 이루어지는지를 알아보았다. 서울에서 보내는 방송들을 한 곳에 모아 충북에서 방송을 보낸다는 것이 신기하고 흥미로웠다. 저희는 각 선생님들께 무슨 일을 담당하시고 정확히 무슨 일을 하시는지를 배웠다. 세 팀으로 나누어 직업을 체험해보았다.

나는 그 중에서 아나운서를 체험해보았는데, 아나운서가 의외로 많은 장비를 사용하는 것을 깨달았다. 소형 마이크와 소형 무전기를 옷에 부착하여 카메라 밑에 보이는 자막을 읽는 것이 신기하였다. 비록, 실제 아나운서처럼 또박또박 정확하게 못 읽고 말을 더듬는 것이 아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아나운서들이 글을 실제로 보지 않는 것처럼 하여 정확하게 발음하여 읽는다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알았다.

마지막 날에 저희는 성화개신죽림동주민센터에서 풍경섭 동장님을 만나보았다. 우리는 주민 센터 공무원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알아보았다. 주민 센터에서는 동, 읍, 면에서 어떠한 일을 주최하는 것을 도와주고 주민들을 위해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도와준다고 했다.

공무원들은 각 부서마다 하는 일이 다르다. 예를 들어, 문화에 대한 부서, 행정에 관한 부서 등이 있고, 급마다 어떤 차이가 있는지도 자세하게 알려주었다. 동장님은 “청소년들이 혼자가 아닌 모두를 생각하고 어떤 일이 있어도 긍정적으로 생각하셨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4일 동안의 체험해보았지만, 의미 있고 좋은 경험을 한 것 같다. 일상생활에서 흔히 체험할 수 없는 것을 우리 동에서 쉽게 체험해보아 <함께사는우리>라는 단체에게 감사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