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세상은 생지옥인가, 놀이터인가

이은규
2015-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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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규의 눈]문명, 인간이 만드는 길 ‘마음’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애국, 묻거나 따지면 종북. 광복 70주년을 기념하는 오늘날 이 땅을 지배하고 있는 논리이다. 아닌가?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순응, 묻거나 따지면 왕따. 해서 모나지도 튀지도 말고 살아라. 사는 데로 생각하라고. 아닌가?

투기와 소비가 애국이라는 나라에서 경제 살리기는 자본가 살리기에 다름 아니다. 국민에 생명과 재산, 미래를 걸고 전쟁불사를 외치는 국가. 우리는 협잡에 능한 타짜 국가를 섬기고 있는 걸까? 태극기 사랑이 애국이라는 나라에서 인간은, 사람은 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고수에게 세상은 놀이터이지만 하수에게 세상은 생지옥일 뿐이다. 영화 ‘신의 한수’에 나오는 대사이다. 인간이라면 누군들 놀이터에서처럼 살고 싶지 않을까? 그런데 여기 이 땅은 ‘불신지옥 예수천국’을 핏대 세워 외치는 생지옥이다. 왜냐고?  놀이터에서라면, 천국에서라면 핏대 세울 일이 뭐 있겠는가? 외치는 그들이 생지옥속에 있는데 누가 누구를?  구원은 밖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안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스스로의 각성에서부터 구원은 시작된다.

나는 놀이터에서 살고 싶다. 인간들과 모든 생명들이 생지옥이 아니라 놀이터에서 조화롭고 평화롭게 숨쉬기를 바란다.

이번에 추천하는 기사는 마루야마 겐지와의 대담기사이다. 당신에 세상을 놀이터로 만들고 생지옥으로 만들고는 온전히 당신에게 달려 있음을 자각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앗살라무 알라이쿰’

 

<경향신문>[문명, 인간이 만드는 길 ‘마음’ - 전문가들과의 대화](9) 마루야마 겐지·소설가

ㆍ지배계급 위해 움직이는 국가를 대부분 ‘내 나라’로 착각
ㆍ집단에 눌려 잃어버린 ‘개인’ 되찾아주는 게 나의 문학

우리는 개인의 결정이 모여 전체의 입장을 정하는 민주주의 시스템 속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30년 동안 개인이 품어오는 희망의 무게는 바람빠진 풍선처럼 가벼워졌으며, 불안에 흔들려 왔다. 나의 선택이 나의 삶을 책임질 수 있을지 그 의심의 부피 역시 커져버렸다.

광복 70주년이다. 그 어느 때보다 공익캠페인에서는 국가를 위하는 마음, 국가를 위한 희생을 강조하고 있다. 문제는 어떤 국가를 추구하는가에 달려 있지 않을까? 서구를 중심으로 세계는 불평등이 도를 넘고 있으니 해결하자고 목소리를 높이고, 한국 역시 불평등의 가속화 속에서 더 많은 이들이 목숨을 버리고 있다.

▲ 마루야마 겐지. 출처:경향신문

역사, 문명의 진보는 순응하지 않는 개인의 결정에 의해 진전되어 왔다. 그렇지 않았으면 바뀌어지지 않았을 왕정이었고 정교일치였으며 봉건이었을 것이다. 지금, 우리는 과연 전체를 ‘나’의 뜻으로 진전시키고 있는지? 집단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휘청이는 개인의 마음을 살펴보기로 했다.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일본 작가 마루야마 겐지에게 그 현상을 물었다. 그는 파도처럼 밀려드는 조직, 사회, 국가의 이데올로기 공세에 실려 부표처럼 떠다니는 개인의 선택에 끓어오르는 안타까움을 토했다.

마루야마 겐지와의 대담은 지난달 6일 그의 자택에서 이뤄졌다. 도쿄에서 기차로 3시간 반 걸려 도착한 나가노현 시나노오오마치(信濃大町)역으로 그는 직접 마중을 나왔다. 트럭을 몰고 위아래 블랙진을 걸쳐 입은 풍모는 소설가라기보다는 시류에 안주하는 해무 같은 나른함을 거둬내려는 로커의 이미지였다.......

(기사바로가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08212156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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