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고향은

배정남
2015-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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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은 강원도에 있는 시골마을이다. 강원도라고 해서 다 시골은 아니지만 내가 살던 곳은 시골이다. 고향을 떠나 청주에 온지 벌써 8년이 됐다. 오랜만에 고향에 갈 때면 도착하는 순간 편안함을 느낀다. 일년에 몇 번 자주 가지는 못하지만 고향만이 주는 특유의 안정감이 있다. 하지만 과거에 비해 어색한 느낌이 든다. 정확히는 뭐랄까. 낯설다고 하기에는 부족한 무언가가 있다.

고향으로 가는 차 안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소속감’이란 단어가 나왔다. 나이가 어려도 나이가 많아도 소속감이 없다면 불안해 한다는 이야기로 마무리가 됐다. 외로움일까? 했는데, 소속감이 없다는 건 외로움과는 다르다고. 불안함이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였다. 무언가로 설명하기 어려운 그 느낌이 그건가?

어려서는 교복을 입고 학교와 동네를 오갔다. 학교에서 만나는 학생들과는 같은 교복과 체육복을 입는다는 사실로 유대감을 느낀다. 그냥 같은 학교에 다닌다는 것 자체가 이미 서로를 하나로 묶었을 것이다. 선생님이나 관리아저씨는 우리학교 선생님, 우리학교 아저씨라 부르며 우리학교의 조직원으로 나와 관계를 묶어낸다. 학교가 아닌 동네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같은 동네사람이면서 우리 부모님의 지인이거나 내 친구의 가족으로 내 주변사람들과의 관계로 묶어낸다.

요즘 고향에 갈 때 나는 더 이상 교복을 입던 학생이 아니고, 매일같이 집에서 학교를 오가던 동네사람도 아니다. 같이 놀던 친구들도 이제는 없다. 지금의 나는 청주 집에서의 생활, 청주에서 만나는 사람들, 청주에서 일하는 공간에 더 익숙해져 있다. 대학교를 다닐 때 초반에는 ‘어디에서 왔어요?’라는 질문이 많았지만 이제는 ‘어디 살아요?’라는 질문을 많이 듣는다. 내 입에서도 강원도가 아닌 ‘사창동이요’라는 말이 더 자연스러울 정도이다. 심지어 강원도에 가서도 충청도 사투리가 자연스레 나올 정도이니 말 다했다.

이런 내가 갔으니 거기에 있는 사람들에게 나는 강원도에 놀러온 충청도사람인 것이다. 그래서인가? 고향이 편하긴 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어색하게 느껴지는 이유가? 아마 그럴 수 있겠다. 그래도 가는 길에 차안에서 말했던 불안한 느낌은 아니다.

만약 나에게 돌아갈 수 있는 고향이 없다고 가정한다면 그때 나는 불안할 것 같다. 아마 직장이 바뀌거나 다른 지역으로 가게 될 때마다 그 불안은 더 크게 다가오겠지. 새로움이 주는 설렘과 재미는 있을 수 있지만 오랜 안정감과 편안함을 주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물론 그 공간에 얼마나 머무르는지에 따라 다를 수는 있겠지만 고향에서만 줄 수 있는 특유의 그 느낌은 받지 못할 것 같다.

생각해보면 고향 모습이 변해있거나 그 안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과거와 다르더라도 같은 장소를 공유하는 것만으로 서로의 관계를 묶어낼 수 있기 때문에 고향이 편안하게 느껴는 것 같다. 언제든 나는 고향 사람 또는 동네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또 그 장소에 가면 내 추억이 항상 그 자리에 함께 하고 있기 때문에 나는 그 추억 속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것일 테다.

물론 누구에게는 추억이 될 수도 있고 누구에게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곳이 될 수도 있고 기억에 없는 곳일 수도 있지만 제2의, 3의 고향이라는 말이 생기는 요즈음 내 마음 속에 돌아갈 수 있는 고향이 한군데라도 있다면 살면서 덜 불안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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